8. 탈주 스캔들 (8) - 검은 머리 짐승들

© pixabay
© pixabay

“역시, 그럴 것 같았어요.”

얽힌 이 중 교도소를 요양원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 큰 손이 큰 돈 낸 만큼 귀찮은 일 없게 평소 잘 처리하지만, 개 중 간혹 도를 넘는 경우도 있긴 했다.

“근데 너 어째 많이 안다, 본 적도 없으면서?”
“뭘 새삼. 나 알아주는 쓰레기통 출신이잖아요.”

장기 자랑하듯 해진이 으스댔다. 얘길 하다 보니 머리가 아파져서, 인하는 잠시 생각할 게 있으니 얼른 입 다물라며 해진에게 눈을 부라렸다.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폈다. 관절이 우드득거리면서 뻐근하던 부분이 풀렸고, 그동안 인하 옆에서 해진이 수갑을 철그럭댔다. 인하의 움직임에 맞춰서 딸려 가는 팔을, 반려견 산책시키듯 동선이 안 엉키게 잘 움직였다.

“언제 봐도 참 스트레칭이 살벌하네요.”
“장단 맞춰줘서 고맙다.”
“뭘요.”

 

*

 

한밤중 바닷가엔 해파리 떼가 노닐었다. 푸르스름한 야광이 항구 인근 불빛과 어우러져 흐물댔다.

인하는 이동할 시간으로 자정에 가까운 시간을 골랐는데, 이유는 관제탑 때문이었다. 감시자들은 3교대로 일하는 사람들이라 새벽반은 밤 1시쯤 교대하는데, 그래서 밤 12시 반쯤 되었을 때 누적 피로가 제일 높았다. 휴먼 에러를 노렸다.

“이참에 배편이나 구해달라고 할까.”
“아, 감시하는 사람들한테요.”
“응.”

그들은 임시 거처로 삼았던 컨테이너에서 벗어나 드문드문 배가 늘어선 항구의 끄트머리로 이동했다. 밤새 묵으면서 상황을 지켜볼 곳을 찾아 들어간 참이었다.

“전 그러면 크루즈로요.”

뭔, 인하는 어이가 없어져 해진을 돌아봤다.

“왜요, 이참에 크루즈 여행이나 해도 좋잖아요?”
“아니, 농담도.”
“반쯤은 진담인데요. 그 비싼 외제차를 날려 먹은 것도 봐 줬잖아요.”

해진의 말처럼 해문 교도소 탈옥하면서 이미 차를 하나 날려 먹었지만, 없는 일인 양 불문에 부친 이들이었다.

“저 감시하는데 필요하다고 하면, 아마 어지간한 건 지원받을 수 있을걸요.”

도감청이며 보고 사항들만 제대로 확보할 수 있다면, 충분히 밀항까지 주선해줄 사람들이란 걸 인하도 알았다.

“보니까 형사님 간수 일 하면서 연차 쓰는 것도 눈치 보이셨던 것 같은데 복지 차원으로.”

인하는 그쯤에서 해진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됐고, 그보다 넌, 이 섬엔 무슨 일로 왔었는데.”

땅덩이가 작은 곳에 상당한 수의 사람이 몰려 사는 이런 환경은, 기상천외한 일이 배양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다도해 중 하나인 이 근방 역시 한때는 무인도였던 만큼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이 극도로 한정된 집단이었다.

“무슨 대답을 원하세요?”

해진이 항복한다는 듯 양손을 들어올렸다.

“무슨 대답을 원하냐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어릴 때 있던 보육원에 이어서 조직, 뒤통수 맞고 들어간 감옥, 거기에 주 형사님과의 두근두근한 신혼까지. 제 일대기 중에 뭐가 궁금하셔서 묻는 건지 여쭌 거예요.”
“중간에 이상한 게 끼어 있는데.”
“저에 대한 이력쯤 다 꿰고 계시잖아요. 뭐가 더 궁금하신지 궁금한데요.”

빙긋 웃는 해진의 눈동자가 밤의 어둠을 머금었다. 인하는 피식 웃었다.

“앉아서 서류만 들여다봐선 안 보이는 게 있잖아.”

고인 곳은 썩기 마련이지만 해문 교도소는 여느 집단의 썩는 방식과는 꽤 결이 달라 보였다.

“2B0082, 너도 그래서 이 섬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눈여겨봤던 걸 테고, 안 그래?”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심증이었다.

© pixabay


소위 말하는 형사의 직감이라서,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확신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인하가 이걸 주제로 누군가와 얘기한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여기서 누굴 묻었어?”
“아, 조직에서 제 형제였던 사람이요.”

인하는 서류로 봤던 정해진의 이력과 사건 기록을 다시 떠올려봤다. 사건의 심각성이나 잔혹성과는 별개로, 감쪽같이 증거를 인멸하는 이 자식의 솜씨만큼은 인정할만했다. 덕분에 담당 수사관들도 애를 먹었었다.

“그리고?”

순간 미공개 기록을 넘나드는 인하의 질문에 해진이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미소지었다.

“그리고, 제 형을 등쳐먹으려던 여자도 같이요.”
“…….”
“아무한테도 안 털어놨던 얘긴데, 이거 말하는 사람 민망하게 하나도 안 놀라시네.”

오프 더 레코드에서 형사들이 털어놓는 얘기 중엔 술안주도 안 되는 거리였다. 인하는 눈썹을 조금 까딱했다.

“그냥 뭐, 어디에나 있는 흔한 치정극이었죠.”
“그래서 그걸 다 ‘아버지’ 지시로 했던 거고?”
“아버지라, 그 늙은 원숭이 같은 작자 말씀하시는 거죠?”

인하는 풉, 웃음이 터졌고 해진은 안 묶인 쪽 손을 들어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대부분은 그랬는데, 또 매번 그렇진 않아요. 가끔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물고 그러잖아요.”

검은 머리 짐승들을 거둔 거니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해진의 눈이 검게 반짝였다.

“제가 처리한 형도 그랬어요.”

© pixabay

(*원고 본문 중 삽입된 사진들의 출처는 모두 Pixabay 입니다.)

Read more

15. 탈주 스캔들 (15) - 취조는 때와 장소를 안 가리네

15. 탈주 스캔들 (15) - 취조는 때와 장소를 안 가리네

셋을 태운 보트가 외딴 무인도 해변에 선체를 마찰하며 멈춰서자마자 인하는 안도감에 푹 한숨을 내쉬었다. 폭발하는 크루즈에서 나와 물을 헤치고 다시 뭍으로 올 때까지 쌓인 긴장감이 상당했다. “에스코트할께요, 형사님.” “손 치워라…….” “가만히 좀 계시겠어요?” 인하가 반발하든 말든 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보트 비상함에 다행히 소독약과 붕대 등등이 있어서, 응급처치하는 건

By 가넷베리Garnetberry - 가넷베리의 숏텐츠
기록하는 자의 태도

기록하는 자의 태도

여러 번의 북토크를 진행하는 동안 관객들이 내게 가장 궁금해 한 질문은 이거였다. “기록하시면서 구술자의 어떤 모순을 발견하셨나요?” 순간 멈칫했다. 인간의 모순에 관심이 많다는 후기를 쓴 게 화근이었다. 내 구술자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귓가를 때렸다. 당사자를 곁에 두고 그의 뒤틀린 삶과 모순을 발가벗겨 전시하라는 요구. 웃자고 하는 얘긴가?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이미지 출처: 드라마 《영 셸던》 공식 스틸컷 © CBS /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바위를 굴리는 데 필요한 85% _ 드라마 《영 셸던》

‘환승 이직’에 성공했다. 지난 몇 년간 위장병을 앓아가며 애써왔던 게 무색할 만큼 나의 거취는 빠르게 정해졌다. 이력서도 제출하지 않았는데 간단한 지원 양식만 보고도 면접이 잡혔다. 내 일정에 다 맞춰주겠다 하여 기존 직장에 연차를 내지 않아도 됐다. 유달리 잘 본 것 같지도 않은 15분이 지나 이틀 후 합격 연락을 받았다.

By 이표(李表) - 표류일지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손바닥을 펼쳐 휴대폰을 볼 공간조차 없었다. 불빛의 반사 때문에 손을 움직이다 보니 앞사람 팔꿈치를 건드렸다. 등을 찌르기도 하고 스치기도 했다. 앞사람과 뒷사람 사이 10센티미터 미만. 그 공간에 나를 밀어 넣었다. 낯선 사람들, 등짝의 뜨거움이 나에게도 전달됐다. 머리 위에서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조차 땀을 머금은 끈적한 뜨거움을 식히지 못했다.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