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탈주 스캔들 (5) - 순식간에 수위가 높아져
“아니, 그게요. 남 형사님은…….”
그동안 되게 주 간수를 거슬려 하시는 것 같길래, 뭐라 작게 우물쭈물하는 팀원에게 눈을 부라린 의일은 뭐라고 더 말 섞는 대신 고개를 돌렸다.
그들 앞에서 푸른 빛을 뿜는 관제탑 모니터 안에서 붉게 깜빡이는 인하 일행의 현 위치를 노려봤다.
그러다 그는 유독 새카맣게 때가 탄 부분을 발견했다. 얼룩인 줄 알고 손으로 지워보려 했으나 몇 번을 문질러도 검은 자국이 잘 빠지지 않았다.
“솔직히, 거슬리긴 해.”
아무도 듣지 못할 말을 삼킨 속이 끓었다. 의일은 담배를 꺼내 물었고, 옆에서 뭐라 했다.
“아니, 여기 금연인데요.”
“시끄러워, 좀 냅둬요…….”
이 끔찍한 건 자기혐오일까. 못해도 그 언저리 즈음에 있는 무언가였다.
간절히 바라는 걸 얻으려다 그만 좌절하면, 인간이 얼마나 바닥까지 추해질 수 있는지 의일은 잘 알았다. 그래서 괜히 뭐라도 아는 척, 어디선가 들어본 걸로 스스로를 한가득 치장해봤다.
그러나 그렇게 업적을 과장하고 몸을 부풀리는 짓거리도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빈 수레답게 소리만 요란했다.

*
“윽.”
온몸을 부딪힌 격벽으로부터 텅, 하는 소리가 울렸다.
바닷물에 떠밀려가던 중 갑자기 웬 수조 벽 같은 곳에 닿았나 했더니, 양식장 수조에 막힌 상황이었다. 거기에 내리는 빗줄기가 차츰 거세지고 있었다.
당장 눈에 보이진 않아도 감시망은 이어지고 있겠지. 인하는 고개를 돌렸다.
“저거, 혹시라도 닿으면.”
“네, 그대로 감전되겠죠.”
여전히 태평하기 짝이 없는 해진의 대답에, 인하는 순간적으로 열이 뻗쳤다.
“남 일이야?”
그러나 내지른 고함과 함께 치직, 소리가 울린다. 흠칫 놀라는 그녀로부터 불과 1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손상된 양식장 전선에 퍼르스름하게 전기가 튀었다. 이건, 누가 어떻게 봐도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아뇨, 우리 일이죠.”
해진이 능청스레 인하에게 고개를 까딱한다.
“좀 전에 주 형사님의 그, 목숨 건 프로포즈가 아직도 얼얼하게 귀에 남았어요, 나.”
“하여튼 과장은.”
“그러니까 형사님. 나 아직 죽고 싶진 않거든요.”
그들의 퇴로를 끊은 수조의 격벽 때문에 순식간에 수위가 높아져 버리는 상황이었다.
바닷물이 차오른다. 이미 둘 다 누가 더하다고 할 것 없이 머리고 옷이고 흠뻑 물에 젖었고,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고스란히 비쳐 보였으나 수치 같은 걸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형사님 시키시는 대로 얌전히 협조하려고요. 뭐든 말씀해주세요.”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쵸?”
고개를 기울인 해진이 전선을 유심히 보다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눈동자만 굴렸다.
“나 개같이 얌전히 굴 테니까, 믿어봐요.”
능수능란하게 지껄이는 해진을 보던 인하는 터진 입술 안쪽을 혀끝으로 훑었다.
사실은 내심 초조했다. 아닌 척 평정을 가장하긴 했으나 골치가 아프던 차였다.
당장 그가 얌전하고 온순한 양인 척하는 중이고, 날카로운 이빨을 숨긴 채 입을 꾹 닫고 있었지만 수틀리면 언제든지 뒤통수칠 수 있는 상황이라서.
“일단, 이러고 있자.”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눈이 돌아서 그녀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힌다든가, 심지어 아예 죽일 수도 있으니, 일단 이 미친 자식에게 등을 맡기는 상황을 최소화해야 한다.
“어, 이건.”
그들이 하나의 수갑을 나눠 찼단 걸 확인한 해진의 입가가 순간 굳었다가, 곧 일그러졌다.
“이게 그 유명한 웨딩링인가.”
“그런 거 아니니까 좀, 닥쳐.”
“아무튼 감동이네요.”
히죽 웃는 해진을 보며 인하는 얼굴을 찡그렸다. 손목 맨살에 와닿는 수갑 금속 감촉이 차갑다. 그를 어떻게든 통제하에 넣어둬야 하는데,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란 게 이것뿐이었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겠지. 이제 정말 말처럼 공범인 게 뼈저리도록 실감이 됐다. 난리 한복판에서도 눈을 붉게 빛내는 이 위험한 짐승이랑 한통속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찰나 철컹, 하면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리더니, 수조 격벽 쪽으로부터 웨엥, 웨에엥, 귀가 찢어질 듯하게 경고 사이렌이 울린다.
“꽉 잡아요.”
“아니, 잠깐만.”
인하는 무심코 해진의 팔을 잡았다. 영 알 수 없는 낯짝으로 곧 씩 웃은 놈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더니 매끄럽게 헤엄쳐 수조 구석으로 향했다.

“나 믿어야죠.”
이제 둘이 하나니까. 그 말과 함께 냅다 합판을 뻥 걷어차는 놈이었다.
“어어……?”
꿈쩍도 안 할 줄 알았던 격벽이 흔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