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탈주 스캔들 (12) -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것 같은 상황
인하의 눈매가 미세하게 찡그려졌다. 그렇잖아도 몇 시간에 걸쳐 해진과 함께 주변을 싸그리 훑은 참이었다. 엔진실, 부엌과 세탁실 등등.
애초에 선장과 함께 탑승한 승무원이 묵으며 일정 기간 생활할 걸 상정하고 만들었을 공간인 게 뻔해 보인다. 그런데도 누가 생명체만 골라 증발시킨 것처럼 안에 사람이 없는 게 신기했다.
과장 좀 섞어 어디 인적 드문 마을을 떼어놓은 것 같은 크루즈 내부를 탐색할 때는 물론, 브리지를 거쳐 선장실로 진입한 뒤에도 인적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사, 사람 맞지……?”
그런 와중에 본 사람이었다. 어지간하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람 맞아요. 그러니까 때, 때리지 말고 말로 하시는 건 어떠실까요?”
하물며 그 상대가 어린애일 땐 더욱…….
초면인 그들이 헛발질하는 사이 어두웠던 수평선 한 부분이 밝아졌다. 또 해 뜨는 시간이었다. 새로 진입한 방 안엔 창문이 180도에 가깝게 나 있어 파노라마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수평선에서 해가 떠오르면서 반사된 빛이 바다 위로 주황색 긴 선을 그려냈고, 배 표면에 부딪힌 파도가 작은 포말을 만드는 게 장관이었다.

“해칠 생각 없으니 안심하고, 꼬맹아, 널 보니까 어릴 때 잃어버렸던 여동생이 생각나거든.”
해진이 짐짓 상냥하게 자기소개를 한다. 썩 괜찮은 태도였으나 내용물이 인하가 아는 가정사와는 크게 차이가 났다.
“여동생은 무슨, 넌 듣는 상대가 애라고 그렇게 막 뻥 치는 거 아니, 읍.”
해진이 뒤편에서 인하의 입을 틀어막더니 묘안에겐 안 들리는 크기로 소리 낮춰 속삭였다.
“너무하네요. 기왕 형사님이 잘 지내보라길래 잘 지내려고 나름 애쓰는 중인데.”
“그게 거짓말을 치라는 말은 아니잖아?”
“뭐, 듣기만 좋으면 상관없지 않나요.”
인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가끔 봤다. 허언증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유도 크고 작았다. 갖가지였다. 때로는 스스로를 부풀려 보이기 위해서, 때로는 남들에게 좀 더 매끄럽게 대응하기 위해서 등등.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진짜배기를 보고 싶거든. 적어도 내 취향은 그래.”
“저기…….”
그때 둘 사이에서 눈치 보던 아이가 슬금슬금 끼어들었다.
“저, 혹시 제 처우를 의논하시는 거면 모쪼록 한 방에 깔끔하게 처리해주세요.”
“처, 처리하긴 누가 처리해?”
절대 안 때릴 거라며 양손을 내젓는 인하에게, 빙긋 웃은 해진이 귀띔했다.
“형사님, 생각보다도 더 애한테 약하신가 본데요.”
“시끄러워. 아무튼 너 마지막으로 묻는 건데, 아까 정말 주방 쪽에서 요리할 때도 정말 뭐 없었지?”
“없다니까요. 만약 봤으면 슬쩍 처리하고 나서 지금쯤 형사님께 말을 했겠죠.”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머리가 바빠 인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분명 바닥까지 샅샅이 뒤졌는데 이런 어린애가 아무렇지 않게 불쑥 튀어 나오는 걸 보니 의아했다.
“참고로 이 애 제 애 아니에요, 형사님.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 싶어서 미리 말씀 드리는, 윽, 손이 맵네요.”
뭔 소리야, 인하는 해진의 등짝을 내리쳐 입 다물게 한 뒤 아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넌 이름이 뭐니?”
“묘안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에 타 있었어요.”
그런데 선장실에 있었다고…… 그걸 믿기엔 찜찜한 구석이 좀 많은데.
“진짜에요.”
믿어달라는 듯 눈물까지 글썽글썽해진 아이의 모습에 끄응, 작게 신음하며 인하는 한숨을 쉬었다.
“아, 알겠어. 혹시 배고프진 않고?”
“배고파요.”
“뭐라도 좀 먹자.”
난데없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조난당한 상황에도 밥은 먹어야 했다. 성장기 어린이가 굶으면 안 되지, 찬장이며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통조림보다는 멀쩡한 음식을 만들어 먹이기로 결심한 인하는 소매를 걷었다.
“저기, 오빠.”
그때 묘안이 슬쩍 해진의 옆구리를 찔렀다. 못 들었다는 것처럼 깔끔하게 무시하는 해진에게, 헤실 웃은 묘안이 고개를 들이밀어 물었다.
“오빠, 저 언니 좋아하죠?”
“어, 그건 어떻게 알았냐.”
“신혼집에 끼어든 느낌이라서요. 눈치가 좀 보이네요.”
생각보다 눈치가 좋은 녀석이다. 이거 왠지 말이 꽤 통할 것 같은 꼬맹인데.
“초면이지만 도와드릴게요. 왠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것 같은 상황처럼 보이거든요?”
묘안이 영 어린애답지 않은 웃음을 지으면서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