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붙이지 못한 상실들

이름 붙이지 못한 상실들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힘들어요.”

생각보다 자주 듣는 말이다. 특별한 일이 없지만 그냥 힘들다. 그리고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짧은 말 안에는 그들이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포함한다.

상실은 죽음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리고 청소년들은 매일 무엇인가를 잃는다.

전학 간 친구, 깨진 관계, 포기한 꿈, 성적 확인 후 사라지는 자신감, 무리에서 배제된 후 잃어버린 소속감, 믿었던 어른이 거짓말했을 때 무너지는 안정감, 잃어버린 웃음, 사라진 행복. 이 모든 것들은 상실이다.

특히 4등은 많은 것을 잃었다.
노력에 대한 인정, 주목, 기회, 1등의 자리.
어쩌면 가져본 적 없이 잃어버린 것들도 있다.
그래서 4등의 상실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상실이다.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
되고 싶었던 것.
꿈꿔왔던 모습, 혹은 꿈꿀 자유.
보이지 않는 상실이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작은 상실을 경험한 아이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선생님, 저는 왜 슬플까요? 별일도 아닌데.”

최근에 친했던 친구와 멀어진 아이가 말했다. 싸운 것도 아니고, 어느 날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별일도 아닌데.”라는 말 속에는 아이가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한 슬픔이 담겼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쌓이다 보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힘들어요.”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는 종종 애도할 권리를 잃어버린다. 누군가 죽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면 상실은 상실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게 뭐가 슬퍼.”
“다른 친구 사귀면 되잖아.”
“다음 시험 잘 보면 돼.”
“그냥 넘어가.”

그렇게 상실을 하찮게 여긴다. 우리는 애도할 시간도, 공간도, 허락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슬픔을 삼킨다. 괜찮은 척하면서 빨리 잊으려 한다.
하지만 애도하지 않는 상실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꿔 남는다.

이유 없이 찾아오는 무기력, 작은 일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예민함.
“어차피 또 잃어버릴 텐데.”라는 두려움과 회피.
애도하지 못한 상실들이 쌓여 지금의 무게가 되었다. 그리고 그 무게감은 새로운 시작을 망설이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만든다.

청소년기는 상실의 시간이다. 어린 시절은 끝나고, 어른이 되기 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놓아야 했다.
순수함, 나는 특별하다는 환상, 세상은 안전하다는 착각, 어른에 대한 신뢰 등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르지만 동시에 상실이다. 그리고 이 상실 속에서 아이들은 계속 살아간다.

학교에 갔고, 시험을 봤고, 친구를 만났고, 웃었고, 울었고, 버텼다.
대단한 일이지만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일상이다.

이는 청소년을 지난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이유 모를 무기력, 반복되는 일상, 누군가 보고 싶은 날 많은 연락처 속에서 연락할 사람이 없는 하루. 그렇다면 당신도 무언가를 잃었을지 모른다.

그러기에 당신이 느끼는 슬픔은 과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잃은 것들은 충분히 슬퍼할 가치가 있다. 이것이 친구든, 꿈이든, 과거의 나든 그것들은 모두 당신에게 소중했던 것들이다.

당신에게는 애도할 권리가 있다. 빨리 잊을 필요도 없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슬픔을 느껴도 괜찮다. 그것은 당신의 약한 모습이 아니라, 당신이 무엇인가를 소중하게 여겼다는 증거다.

애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잃어버린 것을 인정하고, 나타나는 감정을 충분히 느끼는 것. 그리고 언젠가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애도다.

당신은 무엇을 잃어버렸나요?
그리고 그것으로 나타난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했나요?

<4등을 위한 글>

오늘 하루, 당신이 잃어버린 것에 이름을 붙여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슬퍼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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