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탕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헤매다 보면, 땅으로 없어질 거 같은 중력이 느껴지는 날이 있어. 노는 것도 자는 것도 어떤 것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다 문득 깊은 물 속에 나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여기는 도시라서 바다가 가까이 있지도, 강이 가깝지도 않았어.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알아?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목욕탕이 생각났지. 우리 동네 목욕탕의 오픈 시간은 6시. 그 시간에 가면 아무도 없을 거야. 가장 깊고 뜨거운 물 속에 나를 넣자.
5시 50분에 부스럭부스럭 짐을 챙겨 나갔어. 아무도 모르게. 다행히 내 방은 출입구가 달라서 잠귀가 밝은 엄마도 내가 나가는 소리를 들을 순 없었을 거야. 그래도 고양이처럼 아주 살금살금 대문을 나섰지.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새벽의 공기는 뇌 속까지 얼어버릴 듯했어. 칼 같은 찬바람이 옷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왔지. 텅 빈 거리를 상상하며 머리는 산발에 눈곱도 안 떼고 나왔는데, 어디선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람들에 놀라 점퍼 모자에 머리를 구겨 넣었어. 빠른 걸음을 재촉하며 앞만 보는 사람들에게 나는 조용히 지나가는 길고양이 정도였는지, 낯선 눈동자가 나를 스치지는 않았어. 잔뜩 웅크린 더러운 얼굴의 나는 괜히 눈치가 보여서 입장료를 계산하는데도 사장 아줌마의 눈을 피했어.
아무도 없는 욕탕을 기대하면서 빠르게 탈의하고 들어갔는데 그곳에서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뒷정리하고 계신 청소 아주머니, 때밀이 시작을 준비하고 계신 세신 이모님, 아침잠이 너무 없는 할머니 두 분까지 욕탕 안에 있었어. 그들은 여자애가 들어오니 잠시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가 이내 자기들의 할 일을 했지. 기대와 다른 상황에 좀 실망했지만, 그래도 등 돌리면 그들이 안 보이는 영역을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나쁘지 않았어. 근데 깊숙이 몸을 담갔다가 숨이 안 쉬어지면 나오길 반복하는 나를 흘깃거리는 청소 아주머니의 시선이 느껴졌어. 이유를 몰라서 눈알을 굴리고 있는데, 그녀는 혼잣말인 듯 허공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어.
“머리를 묶고 목욕탕에 들어가야지.”
“네.”
사물함 키에 달린 줄로 대충 머리를 묶고, 단단히 굳은 어깨까지 천천히 담갔어. 여기가 강이라면 바다라면 좋았을 텐데, 더 깊이 들어가 더 격렬히 허우적거릴 수 있었을 텐데. 뜨거운 물에 풀어진 마음이 흐느적거렸어. 잔뜩 가라앉은 기분이 슬슬 떠오르고 있었어. 뜨겁게 달아올라 조금은 가벼워진 몸을 이번엔 냉수에 담가 보았어. 하지도 못하는 개헤엄을 흉내 내보겠다고, 두 팔과 두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개처럼 보이려고 노력했어.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차가운 물살이 굳은살을 간질였어. 너무 추워지면 다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길 반복하며, 갈라진 물결 사이로 심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 점점 말랑말랑해졌어. 따뜻해져 버린 욕탕 바닥에 앉아 얼마나 있었을까? 천장과 바닥이 번갈아 돌며, 검은색이 칠해졌어.
'밖으로, 밖으로.'
비틀비틀 벌거벗은 몸을 탈의실 나무 마루에 눕혔어. 작은 수건으로 대충 덮인 몸 옆으로 시원한 공기가 지나가니 그제야 갑갑했던 숨이 제 박자에 맞춰 들고났어. 그래도 빙빙 도는 하늘이 조용해지길 가만히 눈을 감고 기다렸지. 모래시계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가까운 인기척에 눈을 떴어. 바닥을 쓸고 계신 매점 아줌마의 분주한 몸짓이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어. 젖은 머리에서 똑똑 떨어지는 방울들, 나무 마루를 타고 흐르는 그 방울들. 그 하찮은 방울들이 모여 만들어진 불규칙한 원이 나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어. 정신이 번쩍 들어, 몸을 덮던 수건으로 떨어진 동그라미를 없애고, 나를 일으켜 세웠어.
정신을 차린 나는 천천히 움직이다가, 이유 없이 가만히 있는 유일한 생명체였어. 분주히 움직이는 그들에게 나는 이방인 같았지. 나를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나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이곳에서 묘하게 마음이 평안해졌어. 이제 더 이상 춥지 않은 몸으로 점퍼의 자크를 풀어헤치고, 성큼성큼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어.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했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그렇게 하루하루가 무심히 쌓였어. 그것도 시작이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