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의 첫째 주. 교실 안은 설렘의 소리로 가득하다. 벌써 친구를 사귀고, 함께 웃는 아이. 작년에 친했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 자기 자리를 찾아 자연스럽게 책상을 정리하고, 공간을 만들어가는 아이들.

그런데 복도에는 아직 한 발짝도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아이가 있다. 문 너머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선다. ‘저 안에 내 자리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담실에서 만난 많은 교실 밖 청소년들은 이 장면을 이야기한다. 새 학기가 무섭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어려운 청소년들은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움에 며칠 전부터 잠을 설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말한다.
“다른 친구들은 잘 지내는데, 저만 그러는 것 같아요.”

진짜 그럴까? 아니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첫 만남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리고 어려운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관계는 원래 어렵다. 그리고 첫 만남은 더욱 어렵다.’
낯선 사람 앞에 서는 것,
나를 드러내야 하는 순간,
평가 받을 것 같은 불안,
혼자 될 것 같은 두려움.

이 모든 것은 첫 만남을 두렵게 하는 나약한 모습이 아닌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리고 이 것들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때, 심리학에서는 ‘사회 불안’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관계에 대한 진지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첫 만남을 유독 두려워하는 아이들은 관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아이들이다. 그들은 관계란 그저 웃으며 인사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자리를 조율하고, 경계를 확인하며, 때로는 상처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전에 받았던 상처가 생각나게 만들기도 하는 존재다. 그러기에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세상은 이런 신중함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생각보다 3월의 교실은 빠르게 돌아간다.
30초의 자기소개,
첫 날 정해지는 자리배치,
다음 날 만들어지는 밥친구,
일주일 안에 윤곽이 잡히는 친구들의 그룹.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아이는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우리 4등들은 조금 천천히 가는 것이다. 4등은 첫 만남에서도 4등이다.
첫 날부터 친구를 사귀는 1등.
자기 소개를 유창하게 하는 2등.
조용하지만 존재감 있는 3등.

그 사이에 4등은 그저 ‘있는’ 아이다. 눈에 띄지 않고, 기억되지 않으며, 특별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있는 것’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화려함은 없어도,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결국 교실 문을 연 아이는 완벽한 자기 소개를 준비하지 못했어도, 아침에 준비한 간식을 전달하는 것을 실패했어도, 여전히 친구를 사귈 자신이 없어도 그 자리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시작은 원래 그렇다. 준비가 끝나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채 시작하는 것이다.

4등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다. 박수를 받지 못하고,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4등에게도 그 시작은 분명히 존재한다. 교문을 넘는 순간,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자리에 앉는 순간, 어색하게 옆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 모든 순간들이 4등의 시작이다.

첫 만남은 너무 어렵다. 그것은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관계가 원래 어렵고, 모든 시작은 불안하다. 그러니 우리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

4등의 속도와 4등의 방식을 존중하면서 해보자.

당신은 지금 어떤 첫 만남 앞에 서 있나요?

<4등을 위한 글>

완벽하게 준비된 시작은 없습니다.
당신이 그 문 앞에 서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미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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