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탈주 스캔들 (3) - 같이 놔두면 사고 치는 놈
우리 둘이 공범이 되지 않겠냐고, 방금 해진이 인하에게 한 제안을 한 줄 요약하면 그랬다. 아득해진 인하에게 그의 시선이 고정됐다.
“주 형사님께선 저에 대해서 얼마나 아세요?”
“뭐?”
정작 인하를 선택지 앞에 몰아세우는 해진은, 무슨 점심 메뉴라도 제안하는 것처럼 침착했다.
“난 우리 주 형사님 꽤 잘 아는데.”
그리고 아까부터 그녀를 살살 긁어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형사님 쫓겨난 거냐고, 혹시 더 일하고 싶었냐고 물어볼 때마다 이렇게, 인상 쓰시는 거라든가.”
거기에 하나 더. 해진은 적당히 대답하는 것 같으면서도 꽤 신중했고, 완강했다. 여러모로 대하기 까다로운 타입이었다.
긴 터널을 나와 쭉 뻗은 고가도로는 흰색의 거대한 교각까지 이어졌다.
대낮에도 통행량이 거의 없는 교각은 해문 교도소와 바깥세상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었다. 몇 km에 달하는 다리 위 와이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었다.

달리는 차의 앞 유리창 너머로 줄줄이 이어진 교각의 와이어가 인상을 쓴 인하의 얼굴에 연이어서 그림자를 드리웠다. 빛과 어둠이 번갈아 왔다.
“아무리 싫으셔도 할 건 해야죠.”
그녀 이마 쪽으로 뻗어진 큼지막한 손바닥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우리 서로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쵸?”
조금만 시간을 끌면 돼, 인하는 출동한 인력과 합류할 작정이었으나 곧 차창 너머로 들이닥친 풍경에 순간 말을 잊고 얼굴이 새파래졌다.
왜 여기서 핸들을 꺾지?
“뭘 또 그렇게 놀라요.”
설마 했는데, 그럼 해문 교도소의 철통 감시망을 정면 돌파할 방법이란 게 지금.
“바다에 뛰어들겠다고?”
“아까부터 닳도록 말했잖아요. 나 직진 취향이라니까요.”
“아니, 야.”
“그래서 형사님의 협조가 필요하고요.”
내밀어진 이 손을 잡으면 공범이 된다.
암만 급한 불 끄려고 저지른 일이라도 나중에 깜지 시말서 몇 장 쓰는 걸로 수습하긴 어림도 없어 보이는데……!
“자,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
“해진이 네가 죽어줘야겠다.”
오랫동안 ‘아버지’였던 남자에게 뒤통수를 맞던 날 정해진은 뼈저리게 실감했다.
혼자였다, 그는.
아주 어릴 적부터 부모 얼굴을 모른 채로 사설 보육원에 맡겨져 자랐고, 성인 될 무렵부턴 조직에서 지내며 잔뼈가 굵었고, 그러는 동안 내내 그의 주변에 사람이 들끓었던 바람에 착각을 했지만 사실은.
“원래는 복역시키다 적당히 때 되면 풀어주려고 했는데…… 일이 그렇게 됐다.”
처음부터 그랬다. 피 한 방울 안 섞여도 끈끈한 사이라는 의부모든 의형제든, 막상 그가 사형 선고 받을 땐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이라는 걸 해진은 깨달았다.
“머저리같이 뭘 또 기대했냐.”
“이 바닥에서 아무도 믿으면 안 되는 거 몰라?”
그래서 한때 형제였던 남자들이 면회랍시고 와서 조롱하며 얼쩡거릴 때도 그냥 무시했다. 암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앞으로 복수든 뭐든 하려면 명줄이 길어야 했다.

그렇게 입 다물고 지내다 보니 콩고물이 있었다. 사고 안 치니 자연스럽게 모범수가 된 거였다.
“왜, 설마 너도 노리는 거야?”
불쑥 옆에서 들려온 말에 해진이 고개를 돌리자 같은 방 룸메이트가 그를 보며 히죽댔다.
“지금 한두 명이 아냐.”
“뭐가.”
“저 주 간수 노리는 놈이.”
해진의 눈이 미세하게 가늘어졌고, 낄낄대는 놈의 희롱이 이어졌다.
주 간수라고 불린 여자는 전체적으로 냉정하고 차가운 인상이었다. 그리고 표정이 거의 없었는데, 단정하게 정리된 중단발의 머리카락 한올까지도 흐트러짐 없다.
그녀의 단정하고 고요한 얼굴 아래, 몸에 꼭 맞는 크기의 간수복이 목 끝까지 단추가 잠긴 것까지 흘끗대던 놈이 해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선 자주 못 보잖아. 저런 거. 그래도 가끔 눈 호강하니, 뭐.”
“왜 자주 못 보는데.”
“모르냐, 독방 쪽에 있잖아. 같이 놔두면 사고 치는 놈들 돌보시느라 바빠.”
“아, 독방 담당이라고.”
그럼 내가 모범수로 있으면 안 되겠네.
해진은 헛숨을 삼키고, 느슨하게 벽에 기대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들고 있던 식기를 놈의 얼굴에 꽂자마자 끄아악, 새된 비명이 터진다. 해진이 해문 교도소에 수감된 뒤로부터 일 년 넘게 한방 쓰면서 지금까지도 별 탈 없이 지내오던 놈이었다.
웨앵, 찢어질 듯 날카롭게 이어지는 사이렌과 이편으로 달려오는 간수들의 욕지거리와 발소리, 삼단 곤봉으로 철창살을 두드려대는 금속음까지.
다 함께 소리 높여 해진이 형사님과 가까워질 날을 축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