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탈주 스캔들 (2) - 좀 즐겨봐요
빠앙.
찰나에 핸들을 확 꺾은 해진과 옆 좌석의 인하에게 찢어지는 듯한 클락션이 울려왔다.
“미, 미친놈이…….”
정말로 간발의 차였다. 한 끗 차이로 사선을 넘나든 바람에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뛰었다. 세상에, 맞은편에서 오던 화물 트럭과 충돌할 뻔했다…….
상대는 몇 톤짜리 트럭이고 질량 차가 압도적이니 부딪혔으면 이 차는 확실하게 찌그러졌을 거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 다 납작해졌을 텐데.
“이번만이에요.”
헐떡이는 그녀를 보며 처음이라서 한 번만 봐주는 거라며 윙크를 날리는 놈이었다.
덕분에 머리가 새하얗게 됐다. 이성이 날아가기 일보 직전. 인하는 속에 치미는 욕지거릴 삼켰다. 식은땀이 흘러내려 등 뒤가 축축했다.
“아무래도 우리 서로 알아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도로에는 흰 점선이 유리창 앞 도로 중간에 그어져 있었다. 속도가 빨라지자 하얀 막대기가 다가오는 것도 빨라졌다. 인하는 이를 악물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너랑 손잡을 일 없거든.”
이를 간 대답에 후, 대답 대신 태연히 차를 몰던 그의 눈가가 살짝 찡그려진다.
이거 안 푸냐, 어디 이것만 풀려봐라, 넌 아주 죽을 줄 알아라, 인하가 지랄을 해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느슨하게 풀어진 낯이었고, 그러면서도 의뭉스러웠다.
정해진은 포커 페이스에 능숙했다. 이미 그의 신상은 인하의 손바닥 안이었는데도, 전담해서 바짝 주시하던 그녀조차도 탈옥 직전까지 전혀 이렇다 싶은 조짐을 느낄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범죄 저지를 것 같은 사람 보는 눈은 자신 있었는데. 인하가 스스로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모든 걸 능숙하게 감출 줄 아는 남자였다.
“그러지 말고 형사님도 좀 즐겨봐요. 오늘 날씨도 이렇게 좋은데, 아깝잖아요.”
이렇게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겨울 하늘이 꼭 앞으로 우리 둘이 잘해보라고 응원해주는 것 같지 않냐고, 해진이 뭐라 지껄이는 걸 흘려들었다.
“안 억울해요? 솔직히 형사 일 더 하고 싶었던 거 아닌가. 쫓겨난 거잖아요?”
그러려고 했는데, 이 자식이 살살 긁었다.
“감방에 갇혀 있던 놈이 뭘 안다고 지껄여.”
“글쎄, 지금 생각하시는 것보다 많이 알 텐데.”
아니, 뻔한 도발에 넘어갈 필요 없지. 인하는 당장 양손을 결박한 테이블 타이에 집중했다. 몇 분 넘게 씨름한 끝에 간신히 낸 작은 틈에 집중했다.
와중 차는 해안국도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좀 더 가면 최근 산을 뚫어 완공된 터널이 나올 텐데, 인하의 생각대로 둘을 태운 차는 곧 앙상해진 나무 덤불 사이로 새카맣게 뚫린 터널로 진입했다.
“저기, 형사님, 지금 딴짓한다고 바쁜 건 알겠지만 나 좀 봐 볼래요.”

터널 천장의 알록달록한 빛이 앞 유리창 너머로 빠르게 스쳐간다.
천장 등은 주광색과 청백색이 번갈아 있었다. 강한 반사광이 인하의 눈을 찔렀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녀 옆에서 왼쪽 눈가를 찡그린 채, 한 손으로 느슨하게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놈의 얼굴도 희었다 붉었다 했다.
“닥치고, 얼른 이거나 풀라고.”
아, 진짜 정해진 이 자식을 어떻게 구워 삶아서 다시 감옥에 처넣지. 당장 머리 굴리느라 바빠서 뭐라고 하는 건지도 귀에 잘 안 들어왔다.
아까 그녀 휴대폰에 온 긴급 문자는 교도소 내부 인력은 물론이고 인근 관공서까지 싹 돌려졌을 거다.
CCTV가 제 기능을 하는 상태라면, 지금 관제탑에서 실시간으로 이 차의 동선을 체크하고 있을 것이고, 급하게 대응팀을 꾸려 인력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인질 잡혀 있다는 것까지 파악을 해뒀을 거고.
보아하니 당장 죽일 생각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인하가 해진을 주시하는 와중 터널의 끝에 이르렀다. 차는 길지 않은 터널을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왔고, 몇 분 안 되는 사이에 경치가 바뀌어 있었다.
직전까진 뻥 뚫려 있는 고속도로였는데, 이젠 멀찍이 민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 유리 너머 주변을 확인하는 인하의 미간이 빛 때문에 찡그려졌다.
“그럼 이렇게 할까요.”
앞을 보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새카만 동공이 붉은 신호 불빛을 담아내는 순간.
“할 일만 마치면 제 발로 감옥으로 돌아갈게요.”
형사님이 나한테 협조만 잘 해주면, 그때까지도 태연하고 영 속내를 읽기 힘들던 낯에 진지한 기색이 어린다. 찰나에 딴 사람처럼 바뀌었다.
“뭐라고?”
“맹세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