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할 수 없는 것을 향하여 _ 뮤지컬 《레 미제라블》콘서트
디즈니 플러스 이용권이 끝나간다. 갱신 가격은 연간 9만 9천 원이다. 대여하는 대가로 한 달에 내는 여러 비용을 따져보았다. 밥 먹을 때 친구로 《모던패밀리》는 필수였다. 이 미국 시트콤을 소장할 경로가 없어 몇 년째 구독하고 있었다. 하긴, 어차피 플랫폼이 사라지면 없어질 반쪽짜리일 것이다. 결국 멤버십을 취소하기로 했다. ‘밥 친구’는 다른 곳에서 찾으면 된다.
취소 창은 처음이었다. 제공한 QR코드를 사진 찍어 링크를 눌러도 다른 화면으로만 연결되었다. 결국 웹에서 직접 멤버십 관리 페이지를 찾았다. 앱에 로그인한 기록은 웹으로 연동되지 않았다. 메일 인증을 거쳐 잊어버린 비밀번호를 재설정한 후 로그인했다. 의미 없는 두 번의 절차를 더 지나고 나서야 앞으로 결제되지 않을 거란 약속을 받아 낼 수 있었다.
남은 기간 볼 콘텐츠를 찜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콘서트가 눈에 띄었다. 이전에 할리우드 볼 콘서트를 여러 개 보았더니 ‘강력 추천 콘텐츠’에 뜬 것이다. 디즈니 플러스는 알고리즘이 단순한 편이지만, 이번에는 잘 맞혔다. 곧장 재생 버튼을 눌렀다.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진행된 콘서트 실황 녹화본이었다. 그래, 스트리밍의 가치는 이것이다. 안방에서 즐기는 세계적인 무대라니. 콘서트 형식이어서 그런지 무대에는 앙상블이 앉아 있는 뒤쪽 계단과 앞쪽 마이크가 전부였다. 별다른 무대장치 변화 없이 두 줄로 나란히 세워진 마이크에 배우들이 돌아가면서 나와 노래하는 구조였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인사하고 뒤이어 관중들의 환호와 함께 첫 번째 넘버 <Work Song(Look Down)>이 울려 퍼졌다. 저지른 죄에 비하여 과한 형벌을 받은 죄수들이 노동하며 부르는 노래였다. 익숙한 음악에 소름이 돋았다. 심심해 보였던 무대가 남성들의 웅장한 합창으로 한순간 강렬하게 바뀌었다. 굶어 죽는 조카를 위해 빵을 훔쳐 19년 동안 수감된 죄수 ‘장발장’과 한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라 믿는 원칙주의자 교도관 ‘자베르’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그들의 연기는 특별한 무대장치가 필요 없었다.

나는 운 좋게도 뮤지컬을 자주 접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때는 시험이 끝날 때마다 대형 뮤지컬을 단돈 1만 5천 원에 보았다.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문화생활을 해야 한다는 한 선생님의 노력 덕분이었다. 처음 본 뮤지컬이 그 유명한 《그리스》였으니 말 다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이모에게서, 휴학 중엔 아르바이트하던 카페 사장님을 통해서 대형 뮤지컬 표를 얻었다. 사촌들과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뮤지컬에 관심이 없던 것도 나에겐 행운이었다.
모든 지인 혜택이 사라지고 소극장 뮤지컬을 보러 대학로로 향하던 어느 날,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이 개봉했다. 돈 없는 대학생에겐 희소식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상영관을 찾아 N차 관람했다. ‘울버린’ 휴 잭맨과 ‘제노비아 공주’ 앤 해서웨이의 새로운 연기가 압권이었다. 모든 넘버를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다니다가 국내 공식 초연 소식을 들었을 땐, 이게 바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6만 3천 원. 학생 할인가였다. 한 줄 차이로 R석과 S석이 갈렸는데, S석 중 맨 앞자리를 택했다. 문화생활에 그 정도 돈을 써본 적이 없어 몇 번을 확인했다. 2층 뒷자리였는데도, 바리케이드와 회전무대 등 최대치로 활용한 무대를 한눈에 조망하는 매력이 있었다. 특히 넘버 〈One Day More〉에서 앙상블들이 입체적인 대열을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각자의 노래를 부르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 울려 퍼질 때 전율이 일어 눈물을 남몰래 닦아야 했다.
그날 배우의 컨디션, 주변에 앉아 함께 감동하던 관람객들이 어땠는지 생생하다. 사실 내 기억 속에서 여러 번 미화되어 환상으로 남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상하다. 분명 당시에는 언젠가 런던에 직접 가서 보리라 다짐했는데, 국내 재연은 언제 했는지도 모르고 더한 값을 치를 수 있을 때부턴 관심이 떨어졌다.
다른 즐길 거리가 많아진 탓일까, 아니면 극장까지 찾아갈 체력도, 그만한 열정도 메말라 버린 탓일까. 이제 나는 잠옷 차림으로 누워 웨스트엔드의 무대를 소비한다. 현장의 전율은 흐릿해졌지만 대신 손끝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는 편리함을 얻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그토록 가 닿고 싶던 무대가 TV 안에 다 들어와 있으니. 9만 9천 원. 멤버십 취소를 취소했다.
그런데도 더한 갈증이 나는 건 왜일까. 화면 너머 공연은 똑같이 완벽한데, 어딘가 빠진 것 같다. 관중들의 환호 소리에 내 몫도 섞여 있기를 바랐다. 나는 그저 관성처럼 일상의 〈Work Song〉을 반복하고 있던 건 아닐까. ‘장발장’도 나고, ‘자베르’도 나인 곳에서 말이다. 아무래도 웨스트엔드에 가야겠다. 결코 소장할 수 없는, 영원한 한순간을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