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수선실 - 3. 4256번 로봇 수선

플라스틱 수선실 - 3. 4256번 로봇 수선
Photo by Jakub Żerdzicki / Unsplash

지철은 시큰거리는 무릎 관절을 매만지며, 몸을 일으켰다. 아침에 지철의 관절은 뼈와 뼈 사이에 자갈이 있는게 분명했다. 작은 움직임에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소리만큼 통증도 요란했다. 경직이 풀리지 않은 오른쪽 다리를 끌고 프린터 앞으로 갔다.

출력이 끝난 4256번의 오른발을 프린터에서 떼어냈다. 오른발에 엉겨 있는 지지대용 플라스틱을 제거했다. 지지대가 있던 자리의 거친 부분을 그라인더로 갈아 매끄럽게 만들었다. 지철은 자기 손으로 다듬는 이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이물감이 없는 표면을 만드는 작업만은 자신 있었다.

4256번의 본체는 오묘한 살구색으로 만들어졌다. 최대한 비슷한 색 필라멘트로 출력했지만, 역시 다른 재질과 일치하지 않는 색은 이질감을 만들었다. 4256번 오른발의 전선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전원을 켰다. 

- 전원이 켜졌습니다. 주인님, 오늘도 좋은 하루입니다.

- 나, 네 주인 아니야. 넌 수리하는 중이고, 여기는 수리 센터야. 간단한 테스트 중이니까 협조해 줘.

- 네,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막 전원이 켜진 4256번은 어쩐지 어제와 다른 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주인의 정보가 로딩될수록 4256번의 얼굴에 감돌던 밝은 주황빛 위로 깊은 바다색이 겹쳤다.

- 오른쪽 발을 새로 만들었어. 오른쪽 발과 발가락 좀 움직여봐. 

오른쪽 발에 힘이 전달되는 전선의 움직임이 보였다. 하지만 발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 왼쪽 발과 발가락 움직여봐.

왼쪽 발도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발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신체를 효율적으로 많이 사용해야 하는 로봇의 경우 발가락 끝까지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필요에 따라 단가를 낮추기 위해 일부 기능을 뺀 로봇이 있었다. 

- 그럼 된 거 같은데, 혹시 내부 오류코드 있는지 확인해 줘.

4256번은 얼굴 모니터에 점검 중이라는 메시지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훑어 내려가는 로딩 화면에서 오류 발견 메시지가 출력됐다. 지철은 확인하기 위해 화면을 터치했다. 

 오류 1) 자폭 퍼센트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로봇 상태를 점검해 주세요.

 오류 2) 오른쪽 팔에 무게 감지 인식 센서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교체가 필요합니다. 

 오류 3) 오른쪽 발에 박힌 이물질이 확인되었습니다. 본체 주변을 확인해 주세요.

지철은 오류 메시지를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오류3은 로봇 본사가 아닌 사설업체에서 수리할 때 항상 나오는 메시지라서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번과 2번은 무시하면 안 되는 신호라 지철은 한 번 더 읽었다. 2번은 뜯어보면 해결할 수 있지만, 1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폭 퍼센트’

이럴 땐 로봇에게 직접 물어보는 편이 가장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지만, 오류메시지를 로봇에게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건 위험하다.

로봇은 점검용 프로그램과 본체 프로그램이 따로 설계되어 있었다. 로봇 자체가 점검을 할 경우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에도, 폐기 되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검용 프로그램의 결과를 본체 프로그램에 공유할 경우 정확한 상태는 알 수 없어진다는 수리 지침이 있었다. 지철은 뒷골목에서 불법으로 일하는 사설 수리공이지만, 지금까지 지침을 잘 따랐다.

그제야 지철은 민국이 놓고 간 커피가 생각났다. 가게 문 앞에 민국의 텀블러에 담긴 커피는 아직 따뜻했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커피 향이 동시에 지철의 폐 속으로 들어왔다. 뜨끈한 커피를 한 모금 넘기니, 이제야 뇌가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 탁탁  

치는 소리에 지철이 뒤를 돌아봤다. 커피가 유아차 앞에서 앞발로 바퀴를 치고 있었다.

- 그래, 한 바퀴 돌고 오자. 

지철은 커피를 유아차에 태우고 홀더에 텀블러를 꽂았다. 유아차를 끌고 나오려던 발길을 멈춰, 4256번의 전원을 껐다. ‘자폭 퍼센트’가 뭔지는 몰라도 지철의 집에서 갑자기 자폭이 실행되는 일은 허락 할 수 없었다. 전원을 꺼도 다시 눈을 뜰 거 같은 4256번의 얼굴을 재차 확인하고 나왔다. 

커피와 나선 길은 주황색, 붉은색 잎이 떨어져 있었다. 나무에 달린 잎은 아직 초록인데, 바닥의 잎은 색을 잃음과 동시에 떨어졌다. 잃어버린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쓸쓸하게 나무를 보는 지철을 커피는 가만히 두지 않았다. 뛰어내릴 듯 안절부절못하는 커피를 지철은 낙엽 위에 올렸다. 냄새를 맡고 또 맡으며 낙엽을 뒤적이는 커피를 바라봤다. 엉덩이 축이 흔들릴 정도로 꼬리를 움직이는 녀석의 흥겨움에 웃음이 났다. 그때 지철은 민국의 로봇이 떠올랐다.

급하게 가게로 돌아온 지철은 민국의 로봇을 컴퓨터에 연결했다. 다행히 수리 폴더에 톱니바퀴 모델링 파일이 있었다. 톱니바퀴 색을 고르고, 출력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민국의 로봇 전원을 켰다.

- 안녕하세요. 주인님, 좋은 아침입니다.

- 나, 네 주인 아니고, 여기는 수리 센터야. 지금 넌 수리 중이고, 한 가지만 물어볼게. 자폭 퍼센트가 뭐야?

- 검색 후 답변 드리겠습니다.

민국의 로봇이 검색 중이라는 화면을 보면서, 4256번 로봇의 전원을 다시 확인했다. 로봇이 눈을 감고 있어도 살아있는 듯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전원을 몇 번씩 확인하던 지철은 안대를 가져와 4256번 눈을 가렸다.

- 모델명 v256 심리 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휴머노이드에서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이 오류 때문에 정부에서는 전액 환불 리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폭 퍼센트가 높아지면, 로봇은 스스로 자폭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 자폭 퍼센트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은?

- 로봇에게 환자로 등록된 주인만 가능하며, 주인의 우울증 중증도와 자폭 퍼센트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지철은 고칠 수 없는 오류였다. 모른 척하고 수리비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던 지철은 고개를 흔들었다. 눈 앞에 그려진 장면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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