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수선실 - 2. 지철과 커피
하루를 시작할 이유를 찾을 수 없던 계절이 있었다. 가장 어두운 구석 그곳이 지철의 자리였다. 비가 지질하게 땅 위에 발라지기만 하던 날, 역 주변엔 유독 사람이 많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날은 오히려 근처 공원으로 숨어 들었다. 비를 확실하게 피하는 것보다 사람을 확실하게 피하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 나았다.
공원을 들어설 때부터 지철의 눈에 거슬리던 것이 있었다. 누런 털이 잔뜩 엉키어 오른쪽 눈을 알아볼 수 없는 얼굴, 한쪽 다리는 굽어진 채 세 개로만 움직이는 개였다. 바깥 생활하기엔 녀석의 체구가 너무 작았다. 많이 나가봤자 3kg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작은 녀석은 집을 나온 건지, 버려진 건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공원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그렇게 눈을 피하며 걸었건만 지철의 뒤를 멀찍이 떨어져 따라왔다. 지철은 개가 더러운 냄새를 좋아한다는 말이 떠올라 괜히 자기 옷 냄새를 맡았다. 멀리 떨어져 거리를 유지하는 개는 쫓아버릴 이유가 없었다. 땅에 고인 빗물을 할짝거리는 짧은 다리의 그 녀석은 흙탕물이 튀어 얼룩덜룩 진한 흙색이 되어갔다. 젖어서 더 앙상하고 볼품없는 몸매가 강조됐다.
배낭 가장 안쪽에 숨겨 놓은 유통기한 지난 소시지 껍질을 벗겼다. 광고전단을 그릇 삼아서 소시지 반쪽을 올려놓고 멀리 앉았다. 검정콩 같은 코를 들썩거리며 다가왔다. 경계는 아까부터 없었던 거 같은데, 음식 냄새에 오히려 긴장했다. 잔뜩 경계 자세로 소시지를 물고 더 멀리 가버렸다. 지철은 남은 소시지를 한입에 넣고 오래 조금씩 씹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떨어지는 비와 꼼지락거리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개가 지철의 심심한 눈에 가득 담겼다. 신문지를 덮고 누운 지철은 몸을 잔뜩 움츠렸다. 얼마나 잤을까, 등 뒤에 개가 엉덩이를 대고 잠들어 있었다. 앙상한 갈비뼈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앙상한 갈비뼈 때문인지 지철은 아침부터 허기가 느껴졌다. 공원의 식수대에서 한참 속을 채웠지만, 허기는 갈증이 아니었다. 지철은 걸음을 재촉했다. 긴 줄을 서서 배를 채우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무료 급식소에 들어가려는 지철을 직원이 막았다.
- 개는 안 돼요.
직원의 시선 끝에 개가 있었다. 데려온 적 없지만, 쫓으려고 위협하진 않았다. 왜 쫓아오는지 이유도 모른다. 지철은 개 한번 직원 한번 쳐다보며 웃었다.
- 내 개 아니에요. 모르는 개가 쫓아오면 내 개가 되나.
개가 지철을 보며 개 잡는 소리를 냈다. 못 들은 척 식판을 집어 드는 지철을 직원이 더 큰 소리로 불렀다.
-당신 보고 난리구먼. 주인 맞구먼! 좀 나와봐요.
- 지난주에도 나 봤잖아요. 노숙자가 어디서 어떻게 개를 키워요. 진짜 모르는 개예요.
개와 직원이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해대는 사이 지철은 밥을 펐다. 나물 반찬에 밥을 비벼 먹으며 부침개 한 덩이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지철의 앞에 최씨 아저씨가 주위를 살피며 앉았다.
- 그거 들었어? 김씨 어제 새벽에 갔어.
- 어쩌다가요?
- 용산역에서 거기 터줏대감하고 시비가 붙었대. 경찰이 오고 난리였다고. 알잖아. 눈 밑에 상처 있는 놈.
최씨 아저씨도 얼굴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남 이야기하듯이 하지만 그 시비에 같이 있었는지, 머리로 얼굴을 가리며 급하게 밥을 먹었다. 역시 비 오는 날 역 근처는 시끄럽게 죽는 곳으로 유명했다. 지철은 자신이 공원으로 이동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하며 나머지 국물을 들이켰다.
무료 급식소에 오는 사람들은 종종 동료의 죽음 장소가 적합했는지, 사망 전문가라도 된 것처럼 떠들어댔다. 그런 이야기를 가림막 없이 들을 수 있는 장소는 이곳뿐이었다.
지철은 종이 귀퉁이를 돌돌 말아서 아랫니 사이를 후비며 밖으로 나왔다. 길 건너에서 기다리던 개가 꼬리를 흔들었다. 본체만체 오른쪽 길을 따라 걷는 지철의 옆으로 개가 달려와 함께 걸었다. 지철은 걸음 폭을 좁혀 걸었다. 일회용 컵에 마시던 물을 들고 걷다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골목에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허겁지겁 물을 마시는 개를 바라보며, 주머니에서 부침개를 꺼내 내밀었다. 개는 이 사이로 삐져나오는 부침개 조각들이 떨어질까 봐, 머리를 흔들어대며 꼭꼭 씹었다.
지철은 계속 쫓아오는 개를 개라고 부르기가 불편해졌다. 개라고 부르면 동네 개들이 다 쳐다봤다. 개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밀크커피색을 닮은 개에게 밀크보다는 커피가 더 어울렸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지철 혼자 다닐 때는 괜찮았는데, 커피랑 다니니 사람들이 더 유심히 쳐다봤다. 감시하는 눈들이 많아졌다. 커피에게 물을 주려고 공원으로 걸었고, 커피를 먹이려고 급식소로 매일 출근했다. 고물상 주변을 기웃거리다 주운 이 빠진 가위로 엉킨 털을 듬성듬성 잘라냈다. 지철은 눈에 띄지 않으려고 살폈고, 신고당하지 않으려고 움직였다.
겨울로 건너가는 계절, 해가 떨어지면 무섭게 온도가 내려갔다. 공원 전망대 아래, 건물이 지붕이 되는 각진 구석에 커피와 체온을 나누며 파고들었다. 지철에게 커피는 의지가 되는 온기였다. 이대로 여기서 이렇게 생을 마감해도 나쁘지 않겠다며 상상했다. 오래오래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연기처럼 사라지는 기분 좋은 꿈이었다. 유리창에 반사되어 쏟아지는 광선의 날카로움으로 눈을 떠보니 품에 있던 커피가 보이지 않았다. 물이라도 먹으러 갔나 식수대 쪽을 두리번거렸다. 지철이 움직이면 어디선가 항상 달려오던 커피가 이번엔 보이지 않았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낯선 느낌에 심장이 덜컥 급변하는 구간을 지나 속도를 높였다.
- 커피야! 커피야! 커피야!
아침 조깅 나온 젊은이. 에어로빅 음악으로 아침을 깨우는 아주머니. 산책 나온 노인까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지철을 쳐다봤다. 정문 쪽을 훑어 내려가는 지철의 눈에 유기견 보호소 차량이 보였다. 개 한 마리가 뜰채에 잡혀 포획 틀에 넣어지고 있었다. 그건 커피였다. 허겁지겁 달려가던 지철은 발을 헛디뎌 휘청거렸다. 두 팔과 두 다리로 땅을 짚고 일어서며 고함을 질렀다.
- 뭐 하는 거야! 당신들 뭔데, 내 개 데려가!
- 애견 등록증 있으세요? 공원 관리자가 신고해서 잡아가는 겁니다. 주인이면 따라오세요. 서류 처리해 주셔야 데려가실 수 있어요. 목줄도 가져오세요.
달려드는 지철을 밀어내며, 유기견 보호센터 주소만 알려준 채 커피를 태운 차는 떠났다. 멀진 않았지만, 돈도 차도 없는 지철은 종일 걸어야 가능한 거리였다. 지철은 무작정 뛸 듯이 걷기 시작했다. 지철이 가까이 보이자, 울어대는 커피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있었다. 제대로 먹은 것 없이 울기만 한다면 며칠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의지와는 반대로 걸음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느려진 걸음에 망설임까지 겹쳤다. 커피에겐 지철뿐일 거라는 생각에 다른 기회들이 끼어들었다. 지철 옆에 있을 때보다 물도 밥도 풍족하게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따뜻한 장소에서 좋은사람들을 만나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고 있을 거라고. 구하러 가려던 발걸음이 땅에 붙었다. 멈춘 걸음을 오던 길로 되돌렸다. 커피와 매일 걷던 거리를 빠르게 지나갔다. 밟히는 장면에 지철의 서운함이 묻을까 봐 걸음을 재촉했다. 걷고 또 걸었다.
- 어이, 개는 어디다 팔아먹고 왔어.
역 앞에 몰려 있는 무리 중 심심한 것들의 입방정이 들렸다. 평소 지철이라면 충분히 무시하며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 내달리는 지철에겐 브레이크가 남아 있지 않았다.
- 뭐 이 새끼야. 어디서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려. 네가 봤어? 봤냐고!
- 이 자식이. 개랑 다니더니 이제 눈에 뵈는 게 없나.
지철 주위로 패거리들이 모여들었다.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이 지철의 얼굴로 날아와 몸 전체를 바닥으로 날렸다. 여러 개의 팔과 다리가 몽둥이처럼 지철을 두드렸다.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비 오듯 쏟아지던 매질이 멈추자, 지철은 몸에 감각이 없었다. 얼굴을 타고 흘러 입으로 들어오는 비릿한 액체를 혀로 밀어냈다. 지철은 대자로 누운 채 비대칭으로 부어오른 입 사이로 웃음이 쪼개져 나왔다. 무리가 물결처럼 갈라지며 누군가가 지철을 들어 올렸다. 흔들리고 끊어지는 어수선한 장면에서 지철은 눈을 감았다. 조금은 소란한 마지막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