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수선실 - 1. 망가진 것들

플라스틱 수선실 - 1. 망가진 것들
Photo by Compagnons / Unsplash

4256번 로봇이 끌차에 실려 들어왔다. 잔뜩 부서진 발가락에 전선들이 튀어나온 형태가 심각해 보였다. 지철은 마감 팻말을 입구에 던지듯 걸었다. 오늘도 민국은 허락 없이 수선실로 들어왔다. 

 "뭐야, 오늘 접수된 건 해주는 거죠? 나 4257번인데."

 "4256번 부서진 부위가 너무 심해."

 "에이, 내 것까지만 해줘요."

 "장담 못 해. 기다려보던지………."

들어오자마자 달라붙어서 종알거리는 민국이 파리라도 되는 듯 지철은 팔을 휘적거렸다. 그제야 민국은 지철에게서 적정 거리로 물러서 나갔다.

지철은 컴퓨터에 연결된 USB 선을 4256번 몸에 연결하고 수선 폴더를 열었다. 폴더는 머리, 몸, 오른팔, 오른쪽 다리, 왼팔, 왼쪽 다리를 나뉘어 있었고, 오른쪽 다리 폴더를 열어 오른쪽 발의 모델링 파일을 찾았다. 발은 세부 부위가 나뉘어 있지 않았다. 

 "4256번 보호자 들어오세요."

 "고칠 수 있나요?"

 "우선 지금 발조각들은 부서지면서 손실된 부분들이 있어서 저 상태로는 수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프린트로 뽑아서 붙이는 방법이 있는데, 로봇 수선 파일에 오른발 전체 파일이 존재해요. 내구성은 현재 본체와 동일 소재로 만들어진 형태가 가장 좋은데, 발가락만 따로 출력해서 결합하실 때 움직임이 기존처럼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그래서 발을 통째로 출력하면 발 전체가 플라스틱으로 바뀌면서 내구성이 떨어져요. 단종된 모델이라 부품 제조도 중단된 거로 알고 있어요. 여기는 플라스틱으로 손상 부위를 교체하는 것만 가능합니다."

지철이 길게 설명하는 사이사이에 4256번 보호자는 자신의 로봇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로봇과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음, 보호자가 선택해 주셔야 합니다. 부서진 부위만 따로 출력할 건지, 발 전체를 출력할 건지. 첫 번째는 직접 모델링을 해야 해서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요. 물론 완성도도 기존 모델링만큼 완벽하진 못하겠죠?"

 "발 전체 출력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여기 자필 사인하시고, 지금 결정하신 부분에 관한 내용이에요. 꼼꼼히 읽어보시죠. 출력은 5시간 정도 걸리지만, 관절 쪽도 봐야 하고, 전선 손상 테스트하고 연결하려면 일주일은 걸려요."

 "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4256번 로봇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주인은 그렇게 뒷걸음치며 가게를 빠져나갔다. 수선실에 들어와 가만히 주인의 말을 듣고만 있던 4256번 역시 주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4256번은 질문을 해대는 다른 로봇들과 다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철은 오른발 출력 버튼을 누르고, 4257번을 불렀다.

 한쪽 다리를 질질 끌고 가는 지철의 뒤를 금색 푸들이 쫓아갔다. 푸들의 다리는 앞다리는 살아 있는 다리였지만 뒷다리는 플라스틱이었다. 앞다리 관절과 같이 움직이지만, 확실히 딱딱한 플라스틱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4257번 보호자, 민국은 푸들을 유심히 봤다.

 "강아지는 왜 다리가?"

 "슬개골 탈구가 왔는데, 너무 늦게 갔더니 치료 못 해준다고 하길래. 그래서 내가 만들어줬지."

 "그 녀석 주인 잘 만났네. 공짜로 다리도 만들어주고."

지철이 커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리는 불편해도 꼬리콥터는 주인이 쳐다볼 때마다 열심히 돌아갔다. 

"허탕 치는 줄 알았네. 오늘 왜 이렇게 손님이 많아요. 나만의 가게였는데."

"뭐라는 거야. 안 고쳐준다."

"넝담넝담."

"어디가 문제야. 주요 작동은 문제가 없던데."

민국은 자신의 로봇 어깨를 눌러 의자에 앉혔다. 로봇은 균형을 잡으려고 뒤뚱거렸다. 민국은 자신의 로봇 전원 버튼을 누르고 말을 이었다.

"여기 톱니바퀴 부분이 부러졌어요. 그래서 시계 기능을 상실했어요. 여기 부러진 톱니만 바꿔주면 되는데, 이것도 단종이라네요."

"모델링해서 출력하려면 2일은 걸려. 근데 내장된 디지털시계가 있는데 장식용으로 돌아가는 아날로그 시계까지 고쳐야겠어?"

"그 아날로그 디자인 때문에 얼마나 비싸게 샀다고요. 돌아가지 않는 톱니바퀴를 가진 로봇은 생명이 끝난 거 같아요. 꼭 고쳐줘요."

"알겠어. 알겠어. 시끄러워 아무튼. 어여가. 다 되면 전화할 테니까. "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술 좀 그만 드세요. 커피 하늘나라 보내고 가셔야지 먼저 가면 안 돼요."

"별 쓸데없는 잔소리를 다 듣겠네. 어여가!"

민국을 내쫓고 가게 문을 잠갔다. 지철이 고개를 돌렸을 때 4256번과 눈이 마주쳤다. 4256번 로봇의 전원이 아직 켜져 있었다. 원래 수리를 맡기는 주인이 전원을 내리기로 되어 있는데, 깜박한 모양이다. 그런데 4256번 로봇의 전원을 누르려고 다가가 보니 로봇은 느낌이 이상했다. 물을 가질 수 없는 로봇에게서 물기가 느껴졌다. 망설이는 손끝을 느꼈을까? 뒷걸음치는 걸음을 들었을까? 4256번은 눈을 감았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지철은 로봇의 등 정중앙 뚜껑을 열어 전원을 눌렀다. 

"네 주인이 잊었나 봐, 잠시 자렴."

4256번은 여기저기 크고 작은 수선 흔적이 많았다. 작동에 문제가 없는 부위는 대충 테이프를 붙여 놓은 곳도 있었다. 인간과 가장 유사하게 만들어진 치료용 휴머노이드 2121년형. 정신 질환자에게만 제공되는 기종이었다. 1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모델은 단종되었다. 그리고 국가에선 전액을 환불해주며, 리콜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돈을 내고 수선하겠다고 지철에게 왔다. 지철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히 살피던 눈을 거뒀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고 밥을 밥통에서 펐다. 김치와 김 그리고 밥으로 천천히 밥알을 굴리듯 씹었다. 씹을 때마다 시선이 4256번에게 갔다. 그때 커피가 앞발로 지철의 다리를 두 번 긁었다.

"커피도 먹고 싶지. "

연신 돌아가는 꼬리콥터가 플라스틱 다리 보철물에 부딪치며 규칙적인 소리를 만들었다. '앉아'를 할 수 없는 아이는 연신 뱅글뱅글 돌기만 했다. 지철은 서랍에서 주사기를 꺼내 커피의 등 피부를 당겨 찔렀다. 커피를 안고, 소독솜으로 등을 문질러 주었다. 눈을 감는 커피를 방석에 조심히 옆으로 눕혔다. 지철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피의 몸을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오늘도 잘 살았다. 잘 자라."

밥그릇을 대충 미뤄두고, 수리실 한쪽 구석에 펴 놓은 접이식 침대에 불편한 다리를 걸치고 반쯤 누워 그제야 눈을 감았다. 지철은 4256번의 눈이 그려졌다. 원래 로봇의 눈은 켜짐과 꺼짐만 있는데, 그것의 눈엔 다른 것들이 담겨있었다. 지철은 별을 세기 시작했다. 

*

끙끙거리는 커피의 소리에 지철은 오만상을 쓰며 억지로 눈을 떴다. 커피의 코를 향해 손을 뻗자 밤새 헤어졌던 주인의 냄새를 맡으며 커피만의 아침 인사를 하고 있었다.

"커피야, 저 녀석은 왜 저렇게 상처가 많을까. 궁금하면 안 되는데, 밤새도록 꿈에까지 나와서."

"뭐라고, 혼자 중얼거려요. 아침 먹었어요?"

 서서히 잠을 깨우는 지철에게 높은 음의 민국이 불쑥 끼어들었다. 가게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발성은 막을 수도 없다. 잠 달아나게 하는 재주는 타고났다.

 

"왜 이렇게 일찍 출근해? 답지 않게."

" 나도 일을 해야 먹고 살죠. 주문 제작이 있어서 일찍부터 바쁩니다. 여기 커피 놓고 갑니다. 웬일로 늦잠을 주무셔요. 커피야, 아빠 일어나라고 보채."

"고약한 놈."

 민국의 소리를 듣고 짖기 시작한 커피를 향해 지철은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말대꾸하듯 짖어대던 소리가 잠잠해졌다. 지철은 정말 일어나기 힘들었다. 하루를 시작하기가 이렇게 힘든 건 오랜만이었다.

Read more

15. 탈주 스캔들 (15) - 취조는 때와 장소를 안 가리네

15. 탈주 스캔들 (15) - 취조는 때와 장소를 안 가리네

셋을 태운 보트가 외딴 무인도 해변에 선체를 마찰하며 멈춰서자마자 인하는 안도감에 푹 한숨을 내쉬었다. 폭발하는 크루즈에서 나와 물을 헤치고 다시 뭍으로 올 때까지 쌓인 긴장감이 상당했다. “에스코트할께요, 형사님.” “손 치워라…….” “가만히 좀 계시겠어요?” 인하가 반발하든 말든 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보트 비상함에 다행히 소독약과 붕대 등등이 있어서, 응급처치하는 건

By 가넷베리Garnetberry - 가넷베리의 숏텐츠
기록하는 자의 태도

기록하는 자의 태도

여러 번의 북토크를 진행하는 동안 관객들이 내게 가장 궁금해 한 질문은 이거였다. “기록하시면서 구술자의 어떤 모순을 발견하셨나요?” 순간 멈칫했다. 인간의 모순에 관심이 많다는 후기를 쓴 게 화근이었다. 내 구술자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귓가를 때렸다. 당사자를 곁에 두고 그의 뒤틀린 삶과 모순을 발가벗겨 전시하라는 요구. 웃자고 하는 얘긴가?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이미지 출처: 드라마 《영 셸던》 공식 스틸컷 © CBS /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바위를 굴리는 데 필요한 85% _ 드라마 《영 셸던》

‘환승 이직’에 성공했다. 지난 몇 년간 위장병을 앓아가며 애써왔던 게 무색할 만큼 나의 거취는 빠르게 정해졌다. 이력서도 제출하지 않았는데 간단한 지원 양식만 보고도 면접이 잡혔다. 내 일정에 다 맞춰주겠다 하여 기존 직장에 연차를 내지 않아도 됐다. 유달리 잘 본 것 같지도 않은 15분이 지나 이틀 후 합격 연락을 받았다.

By 이표(李表) - 표류일지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손바닥을 펼쳐 휴대폰을 볼 공간조차 없었다. 불빛의 반사 때문에 손을 움직이다 보니 앞사람 팔꿈치를 건드렸다. 등을 찌르기도 하고 스치기도 했다. 앞사람과 뒷사람 사이 10센티미터 미만. 그 공간에 나를 밀어 넣었다. 낯선 사람들, 등짝의 뜨거움이 나에게도 전달됐다. 머리 위에서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조차 땀을 머금은 끈적한 뜨거움을 식히지 못했다.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