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님이 회원님의 스토리를 좋아합니다. _ 소설 《슬픔의 틈새》

이미지 출처 : 인스타그램 알림 화면 캡처
이미지 출처 : 인스타그램 알림 화면 캡처

ㅇㅇ님이 회원님의 스토리를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에 ‘스토리’를 업로드했다. 곧바로 여러 명에게 DM(Direct Message)이 왔다. 경주 여행 갔나 보네. 누구랑 갔어. 재밌겠다. 비슷한 내용으로 시작한 대화는 곧바로 주말 약속을 잡거나 연말을 기약하며 마무리됐다. 내 소식에 관심을 보이고 먼저 메시지까지 건네주다니 새삼 고마웠다.

 

인스타그램 계정은 목적별로 세 개 만들어 두었다. 작가 이표 계정과 독서 모임 계정은 각각 업무 계정과 취미 계정인 셈이었다. 개인 계정은 평소 손이 덜 가지만, 한 번씩 소소한 이벤트가 있는 날엔 반드시 접속했다. 여행은 그중 하나였다. 어딜 보아도 흥미롭고, 무엇을 먹어도 새로운 곳에 지금 내가 있다고,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싸이월드 투데이와 페이스북 좋아요 수에 집착하던 때를 지나, 유행 따라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왔다. 친구들이 하나둘 사회에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졸업을 유예한 채 헤매던 나는 금세 탈주했다. 이때쯤 SNS의 폐해를 경고하는 말이 넘쳐났다. 남의 특별한 순간을 내 일상과 비교하지 말라고 했던가. 나도 동의했던 것 같다.

 

직장 생활에 한창이던 어느 날, 다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유예되지 않은 기쁨을 나도 함께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상에 이벤트가 있는 날 사람들은 24시간 동안만 볼 수 있는 스토리를 올린다. 피드에 남아 늦게라도 볼 수 있는 게시글과는 달랐다. 단 하루, 한정된 시간 동안 나의 소식을 보고 하트를 누르고 DM까지 나눈 사람과는 몇 년 동안 얼굴을 보지 않아도 유대감으로 이어졌다. SNS를 소홀히 했더니 이런 기쁨의 순간을 함께 축하하지 못하고 나만 뒷북을 치는 일이 잦았다. 정작 만나서는 스토리에 올리지 못하는 일상의 고단함만 나누곤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더니, 유소식이 희소식인 것 아닌가.

 

 

이미지 출처: © 사계절 / Photo by 이표
이미지 출처: © 사계절 / Photo by 이표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이 옛말은 소식을 전할 길이 요원했던 시절에 서로에게 건네던 일종의 위안이었다. 일제강점기 말미를 배경으로 한 소설 《슬픔의 틈새》를 읽으며, 정보 과잉의 시대인 오늘날 이 말의 깊이를 다시금 생각했다.

 

단옥네는 조선 다래골에서 일본을 거쳐 사할린 남쪽 화태(樺太, 사할린의 일본식 지명 ‘가라후토’를 한국식으로 음차)까지 넘어왔다. 그곳 광산에 강제 징용된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당시 화태 조선인들은 기술적 한계와 더불어 온갖 정치적인 이유로 정보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땅의 주인이 일제에서 소련으로 바뀌고 이데올로기가 변하는 동안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여동생은 다래골에 남았고, 오빠는 행방불명되었다. 아버지는 다른 광산에 징용되어 일본으로 갔으며, 남동생은 북한군이 되었다. 언어도 이름도 바꾼 채 살아가는 동안, 단옥이 고향과 가족의 소식을 알기까지 50년이 걸렸다.

 

이 지난한 세월 동안 소식을 전하는 방법은 실제로 먼 길을 다녀온 사람을 통하거나 편지가 전부였다. 하층민이자 소수민족인 한인들은 남들처럼 통신 발달의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 그렇게 간신히 전달받은 소식은 대부분 가족의 부고였다. 마을 사람들의 비통함을 보며, 단옥은 차라리 아무 소식이 없기를 바랐다. 나쁜 소식을 듣지 않는 이상 가족들은 단옥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쉴 테니까.

불행은 빠르고 쉽게 전달된다. 스마트폰 화면 속 어디를 눌러도 시선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소식으로 넘쳐난다. 친구들의 일상이 담긴 스토리는 무감하게 넘겼으면서 연예인 이름이 오르내리면 가장 나쁜 소식부터 연상하곤 했다. 그렇게 엉뚱한 곳에 열을 내다가 정작 가까운 이들에게 쓸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진 않을까. 언제든 닿을 수 있는 소식통을 바로 한 칸 옆에 두고 릴스만 하염없이 넘기고 있진 않았을까.

 

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개인 계정을 나눈다. 전화번호는 부담스럽고 카톡 아이디는 번거롭던 차였다. 이렇게 쌓인 팔로우 목록 덕분에 알고리즘이 제대로 엉켰나 보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인의 일상으로 피드가 채워졌다. 어떻게든 일관된 키워드를 찾으려는 인스타그램의 노력이 가상해서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른 이들도 내 소식을 이렇게 어영부영 알게 되면 좋겠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친구 하나가 스토리를 올렸다. 하트를 누르고 곧장 DM을 보냈다. 축하해, 쌍둥이라니. 뒤늦은 추석 인사도 건넸다. 그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잖아. 친구는 이 옛말로 답하며 그간 연락하지 않은 시간에 대한 머쓱한 사과를 전해왔다. 조만간 만나자는 말이 현실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오래도록 희소식을 공유하며 하트를 날리면 될 것이다.

Read more

콕 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콕 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ㄴ + ㅏ= 나 ㄴ + ㅓ= 너 나와 너의 차이, 겨우 모음 하나 바깥으로 삐쭉 나온 선, 그곳만 바라보던 ㅏ는 안으로 감춰진 선, 그곳에 숨어버린 ㅓ를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하나의 단어로 똑같아지길 바라며 간격을 좁혔다가 넓혔다가 그렇게 서로의 선을 넘나들었다. 그렇게 나와 너를 담은 글자를 알아간다. ㄴ+ㅏ+ㅓ = 내 나는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
[정신건강의 날 특별편] 죽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_청소년 자해를 이해한다는 것

[정신건강의 날 특별편] 죽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_청소년 자해를 이해한다는 것

[특별편 - 정신건강 이야기] 10월 10일,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 오래 고민했다.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을 쓰면서 언젠가는 꼭 다뤄야겠다고 생각해 온 주제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상담실에 찾아왔다. 아이는 커터칼로 손목을 그은 상태였다. 어머니께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가 왜 죽으려고 할까요?” 하지만 자해를 한 아이의

By 김지혜 - 4등을 위한 글
그 남자의 사과법

그 남자의 사과법

세상에는 이런 걸 사과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혹시 내가 서운하게 한 것이 있다면 마음 푸세요.” 이게 왜 문제냐면 일단 자기 잘못에 대해 깨끗이 인정하는 태도가 없다는 것이다. “~한 것이 있다면”은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당신이 그렇다고 하니,라는 바탕이 깔려 있는 셈이다. 게다가 “서운하다”는 단어는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나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박완서의 시작이 없었다면

박완서의 시작이 없었다면

공모전의 계절이다. 칼바람이 맹위를 떨치는 겨울 신춘문예가 지나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도 엉겨 붙은 감정의 결정이 맺히기를 기다리는 공모전이 여기저기 열린다. 유려한 문체로 문단을 휘어잡는 젊은 작가들이 늘어나는 동안, 지천명을 앞둔 나는 문학 '학도'로만 몇 년째인지 모른다. 이렇게 기약 없는 일을 해도 되는 걸까, 끊임없이 의심하다가도 그 주저함을

By 마침 - 명프로젝트 & 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