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나혜석
1927년 세계일주에 나선 나혜석 -조선일보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처에게 순결을 요구하면서 남의 처에게는 정조를 빼앗으려 하오. 남녀가 다 같이 불완전한 인간이요, 서로의 자유를 존중해야 할진대 어찌 여성에게만 순결의 멍에를 씌우려 드는가.”

— 나혜석, 「이혼고백서」 (잡지 『삼천리』, 1934년 8월호·9월호 연재)


세기의 이혼 소식이 들려오고 포털과 유튜브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누구의 잘못인지, 위자료와 재산분할은 몇 대 몇인지 따지는 영상들이 쏟아지고, 대중은 손쉽게 도덕적 심판관이 된다.
하지만 법정은 상대적으로 차분하다. 오늘날의 이혼은 한 사람의 도덕성을 단죄하는 자리가 아니라, 성인 두 사람이 맺었던 혼인 계약을 정리하고 각자의 기여도에 따라 재산을 나누는 지극히 현실적인 법적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90년 전,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1896~1948)이 마주했던 법정은 전혀 딴판이었다.
1934년, 나혜석은 파리에서 연인 관계였던 유력 정치가 최린을 상대로 1만 2,000원의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이혼 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낸 절박한 소송이었지만, 그가 내세운 법리 논리는 다소 기괴했다.

"최린이 내 정조를 빼앗아 남편의 '부권(남편의 권리)'을 침해했고, 그 바람에 이혼당해 굶어 죽게 생겼으니 배상하라"는 논리였다.

여성의 몸이 독립된 개인의 것이 아니라 남편의 소유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제 권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남편의 물건을 훼손한 죄'라는 해괴한 남성 중심의 법리를 빌려와야만 했던 것이다.

지금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지금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지는 기본 권리다. 반면 당대의 정조는 남편 가문에 바쳐야 할 의무로 여겨졌던 것 같다.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니고 취미(기호)일 뿐"이라는 나혜석의 선언이 그 시대 얼마나 충격적인 폭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은 가사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아 재산을 나누고, 아이를 만날 권리(면접교섭권)도 보장받는다. 하지만 당시 법에는 이런 제도가 아예 없었기에 나혜석은 이혼과 동시에 빈손으로 쫓겨났고, 아이들을 보러 가도 문전박대를 당했다.
위자료 또한 상처받은 당사자가 받는 돈이지만, 당시 법정에서 나혜석의 피해는 '남편의 권리를 해친 피해'를 통해서만 겨우 다뤄질 수 있었다.

여기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나혜석은 '명(命) 프로젝트'가 다뤄온 여성 서사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비장하게 대의를 품거나 일상을 묵묵히 견뎌낸 인물이 아니다.
그는 모성애라는 신화를 거부하며 육아의 밑바닥 고통을 거침없이 털어놓았고, 사랑과 욕망에 지나치게 솔직했으며,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논쟁적인 선택만 골라 했다. 이혼 후 잡지 『삼천리』에 장문의 「이혼 고백서」를 실어 남편과 자신, 심지어 연인의 내밀한 사생활까지 온 세상에 낱낱이 까발렸을 정도다.
욕망과 결점을 고스란히 지닌 인간으로서, 당대의 위선에 정면으로 맞선 주체적 개인.
이 지점에서 나혜석을 바라보기로 했다.

남성의 일탈은 '호방한 풍류'나 '예술가의 방황'으로 너그럽게 넘어가던 시대였다. 반면 여성의 실수는 곧장 사회적 사형선고로 이어졌다. 나혜석은 얌전히 동정을 구하는 대신, 욕을 먹더라도 제 이름을 내걸고 이 이중 잣대를 공론장에 내던졌다. 법적으로는 완패했고, 소송도 결국 취하했지만 말이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소파 방정환이 관여하던 잡지 『별건곤』이나 소설가 김동인 같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은 그를 '서양 바람 든 방종한 여자'라며 비웃었다. 대중은 나혜석의 사생활을 질겅질겅 씹으며 혀를 찼다. 파리를 함께 다녀온 남성 최린은 여전히 유력 인사로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나혜석은 여관과 절간을 전전하다 1948년 시립 자제원에서'이름 없는 행려사망자'로 눈을 감았다.

90년이 흐른 지금, 법은 진보했고, 이혼은 더 이상 주홍 글씨가 아니다. 하지만 사생활을 물어뜯는 여론과, 여자가 제 몫을 주장할 때 따라붙는 가혹한 잣대는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나혜석을 대단한 여성 영웅으로 포장할 생각은 없다. 사랑도 하고 실수도 저지르며 제 욕망대로 살다가 세상과 대판 싸운 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숨기거나 타협하지 않고 자기 생긴 모습 그대로 시대와 맞섰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혜석은 충분히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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