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의 역설
강사가 검사 방법 설명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이미 검사지의 그래프까지 완성해 놓은 상태였다. 80여 명의 학우들이 모인 수업이니 강사가 검사 방법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고 떠먹여 주듯 각 단계를 진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검사에 의구심을 가진 건 자가 채점식이라는 점 외에도 주도형, 표출형, 분석형, 우호형 네 가지 분류 중 내가 어떤 유형에 속할지 뻔했기 때문이었다. 몇 단계를 앞서 그래프까지 멋대로 완성한 사람. 굳이 검사까지 필요하겠나.
내 결과지의 그래프는 강사가 준비한 PPT 자료의 예시에 등장한 딱 그대로의 패턴을 그리고 있었다. 주도형의 전형이라는 얘기였다. 이미 예견된 결과가 감흥을 줄 리 만무하니 기대감은 별로 없는 상태였다.
그나마 의외였던 것은 수업을 들었던 80명 중에 주도형이 고작 3명이라는 점이었다. 강사는 결과의 의미까지 설명하고 나서 유형별로 모둠을 만들도록 했다. 80명 중 단 3명이라니. 사람들이 우리 세 명을 관찰하는 게 느껴졌다.
더 웃긴 건 우리가 모이고 나서였다. 모둠별로 토의를 거친 후 발표를 하게 돼 있었는데 우리는 만나자마자 종이를 꺼내 들고 어떻게 하면 발표할 내용을 빨리 정리할 수 있을지 각자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통성명이나 안부 인사는 시간만 지체할 뿐이라는 듯. 각 문항에 각자의 답을 돌아가며 적어 내려갔고 마지막으로 의견 통합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유형이 모인 테이블에서는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로 시끄러웠지만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종이만 내려다보았다. 볼펜 끼적거리는 소리로 적막한, 유일한 테이블이었다.
그럴 줄 예상은 했어도 쓴웃음이 나왔다. 주도형이 가진 과업 지향적인 특성 때문이었다. 우리 셋은 과업을 만족스럽게 수행하는 게 우선이었다. 다른 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교는 안중에도 없었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으레 눈치 보듯 ‘이런 거 해야 되지 않나’ 이런 과정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뭐, 예상한 대로 발표도 가장 먼저 손 들고 했다. 사실상 알차고 잘 정리된 발표였다.
속으로 좀 웃었는데, 발표까지 마치고 나자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주도형이긴 하지만 그동안의 사회화 과정으로 나는 다른 이와의 유대나 소통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주도형인 내 눈에도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보일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테이블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발표를 마지막으로 수업이 끝난 후에도 다른 팀은 서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빴지만 우리는 책상을 신속하게 정리하고, 인사를 한 후 깔끔하게 헤어졌다. 매우 주도면밀하고 군더더기 없는 종결이었다.
따지고 보면 다른 팀도 몇 마디 더 나누었을 뿐 수업을 계기로 이후에 만남이 이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수업 이후 만남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평소에 얼마나 경직된 사람처럼 보일지 깨달았을 뿐. 전보다 타인에 대한 유대감이 높아졌다고 해도, 그것으로 충분한지 생각해 보는 계기였달까.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나란 사람에게 일의 진행과 결과도 중요하지만, 재미도 그만큼 중요한 요소였다. 발표를 신속하게 잘 해내는 게 중요한 수업이 아니었다. 경직된 사고가 개인의 세계를 얼마나 축소시키고 재미를 앗아가는지 알 수 있는 계기였다.
타고난 기질은 바꿀 수 없다고들 한다.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사회화 과정에서 오는 순화의 영역(꼭 순화의 과정으로 가는 것만은 아니지만)이 분명히 존재한다. 까칠했고 뾰족했고 일의 결과만이 중요했던 내가, 그 완벽한 효율성 사이의 공백에서 결핍된 재미를 응시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