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 다시 시작이 두려운 이유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
“얼음”
땀을 흘리며 가장 열심히 뛰던 아이가 멈췄다.
여전히 팔은 뻗어있고, 한쪽 발은 든 채로 얼어 있었다.
지금이라도 달릴 수 있어 보였지만, 술래는 그 친구를 뒤로한 채 방향을 틀어
다른 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주변 친구들도 잠시 눈치를 보지만, 그 친구에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얼은 친구는 놀이에서 탈락했는가?
아니다. 얼어 있다고 해서 놀이에서 빠진 것은 아니다.
얼어있는 아이는 자신이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린다.
자신에게 ‘땡’을 해줄 누군가를 살피기도 하고,
자신이 멈춰있는 동안 주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켜보기도 한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얼어있는 아이에게 ‘땡’의 타이밍을 살피는 친구들도 있다.
어쩌면 얼음의 순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뛰기 위해 주변을 살피고 회복하는데 꼭 필요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2학기가 시작되는 9월은 마치 이 얼음의 순간과 닮아있다.
3월, 교실 문 너머로 들어가지 못했던 아이를 기억하는가?
혼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얼어붙은 채, 복도에 서 있던 아이.
첫 만남이 너무 어려웠던 얼은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조용한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은 용기를 쌓아가며, 1학기를 무사히 버텨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되자, 아이는 다시 얼어붙어 있었다.
"선생님, 저 못 하겠어요. 1학기 때처럼 또 이러면 어떡하죠."
3월의 적응 과정이 힘들었던 아이에게, 개학은 단순히 학교에 다시 가는 일이 아니다.
힘들었던 기억이 함께 떠오르고, 다시 적응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생기고,
간신히 안정되었던 마음이 또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마음이 잠시 얼음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순간을 너무 빨리 실패라고 부른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얼어 있는 순간 역시 회복의 일부다.
3월의 복도에서 물러섰던 걸음도, 다시 낸 조용한 용기도
그 자체로 아이의 회복을 위한 자리였다.
방학이 지나 다시 얼어붙었다고 해서 그 경험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회복은 곧고, 빠른 길이 아니다.
괜찮았다가 다시 힘들어지기도 하고, 잘 해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멈추기도 한다.
한참을 앞으로 나아간 것 같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니 다시 힘들어졌다고 해서, 그동안의 회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회복에는 다시 뛰어가는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닌, 멈춰 있는 시간도 있다.
얼어붙어 주변을 살피는 시간, 내가 왜 다시 힘들어진 것인지 이해하려는 시간,
다시 움직이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 이 모든 시간 역시 회복의 과정이다.
얼음의 순간은 후퇴가 아니라 다시 회복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잠시 얼어 있어도 괜찮다.
당신은 아직 놀이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주변에는 당신이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리며
다가오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한마디는 어쩌면,
“땡!”
일지도 모른다.
당신도 지금, 얼음이 된 것 같은 순간에 서 있나요?
〈4등을 위한 글〉
무너지는 것도 회복의 과정입니다.
얼어붙은 지금도, 당신은 아직 놀이 안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