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 그래도 다시, 여기서부터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
“땡-”
얼음은 스스로 풀 수 없다. 누군가 다가와 손을 대고 “땡”을 외쳐야 다시 움직일 수 있다.
누구든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인 “땡”
하지만 땡에도 타이밍은 존재한다.
너무 빨리 다가가면, 상황에 놀라서 다시 “얼음”을 외치게 된다. 반대로 너무 늦게 땡을 해주면, 게임의 흐름을 잃고, 다시 게임으로의 복귀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래서 땡을 센스 있게 잘 하는 친구들은 무작정 다가가지 않는다.
술래와 게임의 흐름을 살피며 땡의 순간을 기다린다.
이처럼 얼어있는 친구들에게도 적절한 타이밍의 땡이 필요하다.
너무 빠른 접근은 준비가 필요한 아이를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고,
늦게 다가가면 누구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고 느끼며 더 깊이 얼어붙는다.
2학기 시작 후, 복도에서 다시 얼어붙은 아이 곁에는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복도에 왜 서 있는지 묻지 않았고, 교실에 들어가자는 재촉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아이 곁에 서 있었다.
얼어있던 아이는 그날도 교실 문을 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친구는 “왜 학교 안와?” 대신 짧은 DM을 보냈다.
“학교 안 올까 봐 걱정했어.”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친구는 얼어붙은 아이 곁에 있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수업 듣기 싫은데 옆에 있어줄래?”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교실 문을 넘었다.
그 한마디는 적절한 타이밍에 건넨 땡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땡은 상대를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닌, 움직여도 함께라면 괜찮다라는 신호였다. 만약 그 말을 처음부터 건넸다면, 아이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일주일 뒤였다면, 이미 너무 혼자 얼어있었기 때문에 다가오는 손길조차 낯설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땡은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다.
얼음을 외친 사람만의 몫도 아니고, 다가가는 사람만의 몫도 아니다.
한쪽은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순간을 위해 조금씩 몸을 풀어야한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그 작은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둘의 타이밍이 맞아야 비로서 ‘땡’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땡의 타이밍을 알 수 있을까?
얼어있는 아이들은 자신이 얼어있다는 것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땡은 섬세해야 한다.
얼어있는 친구가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해서 혼자 있는거야”라고 말을 했다면, 그것은 정말 피곤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말 뒤에는 많은 마음들이 숨어 있다.
도와달라고 말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도움을 요청했다가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표면의 의미로 말을 듣거나, 그 말조차 할 수 없을만큼 무너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대신 작은 신호를 바라보는 일들이 필요하다.
얼은 아이는 교실을 들어갔던 그 이후에도 자주 학교를 가지 않았다.
어느 날은 결석했고, 어떤 날은 교실 책상에 그냥 누워있기만 했다. 친구는 이런 신호들을 지켜보며 다음 땡의 타이밍을 살폈다. 그렇게 얼어붙을 때마다 곁에는 타이밍을 살피면서 다가와주는 누군가가 하나씩 있었다.
이처럼 회복은 지속적으로 녹아있는 상태가 아니다. 얼어붙은 뒤 누군가의 땡을 만나기까지 시간이 조금씩 짧아지고, 다시 게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들어가는 것이 회복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손길을 기다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도 조금씩 몸을 움직여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당신 곁에도 당신의 속도를 살피며 다가올 순간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
혹은 당신이 누군가에게 그 ‘땡’이 되어줄 차례일 수도 있다.
다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얼음인 사람에게도 속도가 있고, 다가가는 사람에게도 각자의 속도가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타이밍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손이 닿고 땡이라는 한마디가 들리는 순간, 우리는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얼음이어도 괜찮다.
그래도 다시, 여기서부터 땡이 시작 될 테니깐
〈4등을 위한 글〉
회복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속도를 기다리는 ‘땡’이 있고,
누군가는 당신의 ‘땡’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