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노란 블루
이른 가을인가 했다
어깨 맞댄 나무들이
어서 오시게 가지 흔들어 주던
하늘 반쯤 가린 부암동 비탈길
흩뿌리던 잎에 홀려
시큰거리는 무릎도 잊고 걸었더랬지
나무와 나눈 말이 곧 이름이 된 사람
그 뜰에 기댄 은행나무
둘의 대화가 잎마다 노란 물이 되어
돌담을 넘고 골목 안으로 번지던
화양연화
아직 여름의 기척이 남아 있건만
어찌 이리 일찍 잎을 떨구는가
무엇이 그 계절을 이토록 조급하게 지웠을까
온기 나누던 뜰이
슬그머니 기댄 어깨를 돌려
공중에서 허물어지는 백 년의 무게
바늘이 지나간 자리로
바람이 드나들었다
새 내려앉던 가지는 신기루가 되고
그늘은 뜰 너머로 밀려
만져지는 건 파랗게 질린 이파리뿐
수백 번의 가을을 건너온 나무가
지상에 마지막으로 써 내려간
파란 유서
노란 블루.
이 시는 올해 4월 부암동 환기 미술관 측에 의해 제초제가 주입 된 은행나무를 기억하기 위해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