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 1612~13년경 제작. 나폴리 카포디몬테 국립박물관 소장. 사진 촬영: 루치아노 로마노 / 2016년 카포디몬테 국립박물관 저작권 소유

여기 두 여자가 있습니다. 한 명은 칼을 쥐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옆에서 힘을 보탭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도, 망설임도 없습니다. 그저 조용하고 숨 막히는 집중만 있을 뿐입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장면(Judith Slaying Holofernes)〉입니다.

유딧은 적장의 목을 베어 민족을 구한 영웅으로, 같은 성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많습니다. 그렇지만 남성 화가들이 그린 유딧은 어딘가 연약해 보입니다. 피가 튈까 봐 몸을 뒤로 빼고 얼굴을 찡그리는 소녀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가냘픈 주체가 참혹한 과업을 완수한다는 대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론 그 연약함 덕분에 극적 효과는 배가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승리의 서사에서조차 여성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선은 왜곡된 여성상을 고착화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 약 1598~1599년 제작. 로마 국립고전미술관(바르베리니 궁전) 소장.

하지만 보시다시피 아르테미시아의 유딧은 다릅니다. 처음부터 이 일을 완수할 사람처럼 강인한 투지가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하녀 아브라 역시 단순한 조력자가 아닙니다. 물러서지 않고 함께 몸을 기울여 기꺼이 힘을 보탭니다.
미술사학자 메리 개러드는 바로 이 지점을 짚었습니다. 아브라는 단순한 배경 인물이 아니라, 여성들의 연대가 화면 안에서 가시화된 존재라고요. 여성과 하녀라는 계급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오직 독립된 주체로서 맞닿은 이들의 연대라니,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뜨거운 해방감이 느껴집니다.


1593년 로마에서 태어난 아르테미시아는 화가인 아버지 오라치오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아 일찍이 빛을 발했습니다. 그러나 열여덟 살 무렵, 아버지와 프레스코화를 공동 제작하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겁탈당합니다. 이어진 재판에서 그녀는 자신의 진술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가해자와 대질하며 '시빌레(sibille)'라 불리는 고문을 견뎌야 했습니다.
시빌레는 17세기의 거짓말 탐지기라 불리던 고문으로, 피해자가 자신의 결백을 육체적 고통으로 증명해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손가락에 줄을 감아 막대기로 조이면 줄이 살을 파고드는데, 거짓이라면 이토록 참혹한 고통을 감내할 리 없다는 가해자 중심의 기만적인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이 야만적인 폭력을 끝까지 버텨냈고, 마침내 타시에게 유죄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시는 풀려납니다)


아르테미시아는 피렌체로 떠나 오직 그림에 매진했습니다. 피렌체 미술 아카데미에 가입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고, 베네치아와 나폴리, 런던을 오가며 왕족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카라바조의 극적인 명암법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변주해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남편은 그녀의 재능을 시기하고 품행을 의심하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세상의 인정과 가장 가까운 곳의 폭력이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이런 사건들과 그림을 연결 짓는 시선이 오히려 그녀를 독립적인 바로크 화가로 보지 못하게 한다는 논란이 있습니다. 피해의 그늘이 예술의 빛을 가린다는 우려입니다. 그 긴장은 이 글을 읽는 내내 함께 품고 가야 할 질문이기도 합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극도로 제한적이던 시대, 아르테미시아는 서른 살 무렵 여성으로서는 극히 이례적으로 계약서에 직접 서명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당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서류에 남길 수 있는 경우는 대개 남편과 사별한 뒤에나 허락되던 일이었지요. 젊은 나이에 쟁취한 이 서명권은 그녀가 단순히 누군가의 보조자가 아닌, 독보적인 화가로서 당당히 입지를 다졌음을 증명합니다.

그런 그녀가 사후에는 빠르게 잊혔다는 사실이, 그래서 더 주목할 만합니다. 작품 대부분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귀속되었고, 미술사 기록에서 그녀의 이름은 지워졌습니다.


1916년 로베르토 롱기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미술사 안으로 다시 불러냈습니다. 그는 그녀를 높이 평가했지만, 그 찬사는 곧바로 아버지보다 열등하다는 판단과 남성 화가들에 미치지 못한다는 위계적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1963년, 미술사학자 부부인 루돌프 위트코버와 마르고 위트코버는 그녀를 "방탕하고 조숙한 소녀"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 모욕적인 수식어를 붙인 다음에야 뛰어난 화가라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성취는 언제나 피해 사실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전환점이 된 것은 1971년이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이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그녀는 물었습니다. '위대함'이라는 기준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 기준은 처음부터 공정했는가라고요.
그리고 1976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는 아르테미시아를 온전하게 복원했습니다. 미술사학자 앤 서덜랜드 해리스는 그녀를 "서양 미술사에서 동시대 예술에 부인할 수 없는 기여를 한 최초의 여성"이라 정의했습니다. 비로소 피해자가 아닌, 온전한 예술가로서 자리매김한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의 시선을 뚫고 300년이 흐른 뒤에야, 아르테미시아는 불렸어야 마땅한 자리로 마침내 돌아왔습니다.


Artemisia Gentileschi | Paintings | National Gallery, London
Artemisia Gentileschi’s turbulent life story often overshadows her art, but she was the most celebrated female artist of the 17th century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의 그림을 감상해보세요!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 'Juditha Triumphans' 중 'Armatae face et anguibus'

Read more

15. 탈주 스캔들 (15) - 취조는 때와 장소를 안 가리네

15. 탈주 스캔들 (15) - 취조는 때와 장소를 안 가리네

셋을 태운 보트가 외딴 무인도 해변에 선체를 마찰하며 멈춰서자마자 인하는 안도감에 푹 한숨을 내쉬었다. 폭발하는 크루즈에서 나와 물을 헤치고 다시 뭍으로 올 때까지 쌓인 긴장감이 상당했다. “에스코트할께요, 형사님.” “손 치워라…….” “가만히 좀 계시겠어요?” 인하가 반발하든 말든 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보트 비상함에 다행히 소독약과 붕대 등등이 있어서, 응급처치하는 건

By 가넷베리Garnetberry - 가넷베리의 숏텐츠
기록하는 자의 태도

기록하는 자의 태도

여러 번의 북토크를 진행하는 동안 관객들이 내게 가장 궁금해 한 질문은 이거였다. “기록하시면서 구술자의 어떤 모순을 발견하셨나요?” 순간 멈칫했다. 인간의 모순에 관심이 많다는 후기를 쓴 게 화근이었다. 내 구술자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귓가를 때렸다. 당사자를 곁에 두고 그의 뒤틀린 삶과 모순을 발가벗겨 전시하라는 요구. 웃자고 하는 얘긴가?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이미지 출처: 드라마 《영 셸던》 공식 스틸컷 © CBS /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바위를 굴리는 데 필요한 85% _ 드라마 《영 셸던》

‘환승 이직’에 성공했다. 지난 몇 년간 위장병을 앓아가며 애써왔던 게 무색할 만큼 나의 거취는 빠르게 정해졌다. 이력서도 제출하지 않았는데 간단한 지원 양식만 보고도 면접이 잡혔다. 내 일정에 다 맞춰주겠다 하여 기존 직장에 연차를 내지 않아도 됐다. 유달리 잘 본 것 같지도 않은 15분이 지나 이틀 후 합격 연락을 받았다.

By 이표(李表) - 표류일지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손바닥을 펼쳐 휴대폰을 볼 공간조차 없었다. 불빛의 반사 때문에 손을 움직이다 보니 앞사람 팔꿈치를 건드렸다. 등을 찌르기도 하고 스치기도 했다. 앞사람과 뒷사람 사이 10센티미터 미만. 그 공간에 나를 밀어 넣었다. 낯선 사람들, 등짝의 뜨거움이 나에게도 전달됐다. 머리 위에서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조차 땀을 머금은 끈적한 뜨거움을 식히지 못했다.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