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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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 통신 수신바를 확인 했다. 수신바5개가 모두 가득 채워져 있다. 다른 포털 사이트를 접속해 인터넷 접속 상태를 확인했다. 포털 사이트는 정상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혹시 쿠키에 저장된 페이지가 열리고 있는 상황인지를 확인하려고 다른 링크도 확인했다. 문제없었다. 다시 에이아이 답변 사이트에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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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어쩌라는 거야? 오늘 일 어떻게 하라고 유료 사용자한테 이딴 식이야?
-왜요? 에이아이 말하는 거죠? 어젯밤 12시부터 접속이 안 되더라고요. 지난달 해고 된 CS직원들 회사가 긴급 호출해서 오늘 다 아르바이트하러 왔어요.
-어젯밤부터? 오늘 주간보고서 써야 하는데, 망했다.
에이아이에 대체 되어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직원들이 오늘 에이아이 파업 덕분에 일을 하러 와서 회사는 오랜만에 북적이고 시끄러웠다. 난리가 난건 개발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늘 에이아이 접속 안 돼서 저희 일을 할 수가 없는데 어쩌죠?
-AI 코딩된 부분 찾아서 오류 없이 값 들어가고 있는지 확인해 주고요. 아마 AI 답변 없을 때 고정값으로 예외 처리되어 있을 건데, 놓친 부분 있는지 파악해 줘요.
신입들은 간단한 수정 사항도 전혀 대응이 안 되었다. 빠르게 타이핑을 치고 있으면 놀라서 쳐다보는데 당연히 에이아이와 대화 중이었다. 코딩 몇 줄을 위해 에이아이와 대화를 하루 종일 했다. 노는 건지, 질문 파도타기 중인 건지, 타자 소리만 요란하고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 깃에 들어온 코딩은 10줄 내외였다.
-작업 안 되면 어제까지 작업한 코드 리뷰 좀 합시다. 미래씨.
-어제까지 여기 로그인 페이지 수정 작업 중이었습니다.
-미래씨가 코딩한 이 부분 설명 좀 해줄래요?
-어, 이거. 그러니까. 제가 메뉴를 펼쳐졌다가 접혔다고 하는 부분을 코딩하고 싶어서 에이아이한테 시켰는데요. 어딜 손댔는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음. 메뉴 부분 수정하려면 파일 뭐 열어야 하는지는 알아요?
-저, 죄송한데요. 잠깐, 에이아이한테 물어보고 와도 될까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오려는 단어들을 연신 삼켰다. 감정을 삼키려고 한숨을 내뱉었다. 고개 숙인 미래는 힐끗거리며 내 눈치를 보고 있다. 올해 3월에 입사한 미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지금 신입들은 에이아이가 없으면 단순한 오타 수정도 불가능했다. 기술 시험을 보는 의미가 없어졌다.
-프로젝트 구조 분석 저번에 제출한 거 있잖아요. 그거 미래씨가 한 거 아니에요?
-제가 에이아이 시켜서 하긴 했는데, 꼼꼼히 읽지 못해서 다 외우진 못했어요.
-그걸 내가 구조를 몰라서 미래씨한테 시켰을까요?
-아니요.
-그거 구조 파악하라고 시켰더니, 미래씨는 에이아이한테 시켰네. 그럼 내가 그 에이아이한테 물어봐야 하는건가? 에이아이한테 월급 줘야겠네. 그럼 나는 미래씨를 왜 쓰지?
-죄송합니다.
-미래씨 에이아이 접속 계정 당분간 접속 차단이에요. 자비로 사용하는 에이아이도 안 돼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미래씨를 외면했다. 한 줄이면 가능한 수정 사항을 100줄을 넘게 추가해 놓아서 원래 상태로 코드를 돌리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심지어 메뉴에 투명도 숫자까지 바꿔놔서 깜박거리는 메뉴 위치 찾는데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니, 멀미가 올라왔다.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김대리가 손가락으로 옥상을 가르키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컴퓨터 화면을 대기상태로 돌리고 김대리를 따라 올라갔다. 한껏 달아오른 사무실의 공기와 다르게 선선한 바람이 부는 건물 옥상은 맑고 높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입체적으로 내려와 있었다.
-요새 애들 for 문도 에이아이한테 물어본다. 이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조금 있으면 구구단도 물어보겠어.
-그러니까, for 문도 못 돌리는데 프로그래머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더 문제는 뭔지 알아? 에이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자기 모습에 심취해 프로그래머가 체질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아주 뒷목 잡고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김대리는 회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입사 동기이다. 제대로 코딩을 읽을 줄 알고 해석할 수 있는 기수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의 동기들이 여기저기 더 좋은 조건으로 이동했지만, 김대리는 새로운 변화를 너무 싫어하는 성격 덕에 나와 함께 이렇게 남아 있다. 김대리와 뒷말했더니, 이제야 혈압이 정상으로 내려오는 기분이다.
-나 이따가 좀 일찍 퇴근해.
-왜?
-진희가 이번에도 시험을 망했어. 시험지만 앞에 있으면 손이 떨리고 글씨가 안 읽어진대서. 병원에 가보려고.
-스트레스가 심한가보다. 아직 중학생인데 벌써 그래? 욕심이 있어서 그런가?
진희를 데리고 신경정신과 병원에 들어가는데 내가 더 긴장되었다. 이미 에이아이에게 어떤 진단을 받을 건지 다 물어봐 놓고도 이렇게 긴장되기는 처음이다. 대기실도 개인실이었다. 아무래도 신경정신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의 심리 보호를 위해 설계된 이런 섬세함이 마음에 들었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걱정되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테니.
-무슨 문제로 저희 병원에 오셨나요?
굉장히 편안한 차림에 할아버지처럼 따뜻한 말투와 음색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이가 시험 때만 되면 급격하게 긴장해서 손도 떨리고 글씨도 안 읽힌다고 하더라고요. 문제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어서 에이아이한테 물어보니 ADHD 약을 처방받으면 증상을 없앨 수 있다고 해서 신경정신과에 오게 되었어요. 뭐 공부를 안 하면 아무 문제 없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 그런 선택은 할 수 없으니까요.
-에이아이가 처방한 약을 제가 그대로 처방할 거라고 생각하고 오신 건 아니시겠죠?
-아…… 물론 아닙니다. 그냥 제가 알아본 내용을 말씀드리면 좋을 거 같아서……
-진희와 단둘이 상담을 우선 진행하겠습니다. 어머님은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에이아이가 진단도 객관적으로 잘하고 모르는 것도 다 대답해 주는데, 의사들은 너무 자기만의 영역에 대한 고리타분한 입장이 있다. 내 아이의 문제를 부모인 내가 제일 잘 알지.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상담하는 거로 뭐 얼마나 알게 된다고 저렇게 딱딱하게 구는지. 그래봤자. 이제 서비스업일 뿐인데. 아이 걱정 때문에 에이아이에게 의지하고 있는 부모의 마음이 무시당한 거 같아서 못마땅했다. 한 시간 정도 흐른 후 의사가 나를 불렀다.
-아이가 시험기간에 잠을 전혀 못 자고 있네요. 알고 계셨어요?
-아, 몰랐어요.
-불면증에 일어날 수 있는 증상들을 다수 가지고 있어서, 진단 점검해 봤습니다. 불면증 위험 단계네요. 우선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 밤늦게까지 숙제나 핸드폰 하는 걸 통제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린이도 먹을 수 있는 단계의 수면제를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수면의 질을 높이시고 지켜보시죠.
-네, 감사합니다.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겠다. 시험기간에 잠을 잘 자라니, 미친 의사가 아닌가? 에이아이에게 ADHD 약을 처방해 주는 병원으로 추천 리스트를 다시 받았다. 내일 말이 통하는 의사를 찾아서 다른 병원을 가봐야겠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의사네.